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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Apr 22. 2024

#김훈 작가

연필로 쓰기


박준이 열어 준 산문 릴레이 다섯 번째.

이번에는 김훈 선생이다.


이문재 시인이 그리도 닮고 싶어 했던 선배였고,

강운구 사진작가의 책에 발문을 써준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라면을 끓이며>(2015) 이후 처음이니

거의 십 년 만에 <연필로 쓰기>(2019)를 통해

그를 조우하였다.


70고비를 넘어선 선생의 남다른 시선이

담긴 산문들을 읽으며,

나도 그 나이에 이르러

조금이라도 이런 시선을 닮고 싶어졌다.


아쉽게도 시인 박준으로 시작한

작가 추천 따라 흘러간 산문 읽기는

여기서 일단락 짓고자 한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지금 70살이 되었다(p21)' - 70세가 된 김훈 작가의 눈에 들어온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 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 그가 그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심미안이 더해지니 그것들은 의미를 찾았고, 지금 독자인 나에게 시간 내어 읽어도 될 가치를 주고 있다. 나도 곧 그 나이가 될 터이다. 그때 나도 평범한 일상에 대해 이런 심미안으로 보고 싶다.


고작 첫 번째 산문을 읽었을 뿐인데 뭔가 다른 차원을 만난듯하다. 아직도 연필로 원고를 쓰고 있다는 그는 천생 작가다. 평범한 삶 이면에 보이는 것들을 글로 세상에 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더욱 건강하게 오랫동안 독자들과 소통해 주길 바라본다.


'<살아가는 사람들-세월호 4주기>(p251)' - 세월호 10주기다. 이날 이 부분을 읽었다. 이 책에는 3주기에 대한 기고글도 앞에 함께 실려있다. 3주기 글은 세월호 사고 지점을 따라 그 현장을 돌면서 탈상의 날이 언제 올지를 토로하고 있다. 이번 4주기는 유가족들을 직접 만나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는지를 다루고 있다. 노 작가가 함께 슬퍼하며 위로하는 모습이 보인다. 10주기를 맞은 지금까지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는 정말 잊지 않고 있는 것인가? 이후 일어난 이태원, 오송 참사... 이것들도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는 듯하다. 제대로 복기하지 않고는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남 탓이요 내 책임이 아니라는 핑계만 무성한 이 현실을 보며 나를 본다. 누구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나로부터 먼저 일어나야 한다. '죄송합니다. 점점 더 무뎌지고 있는 나를 반성합니다. 유가족분들. 힘내십시오.'


김훈 선생의 글에는 세세함이 있다. 깊이가 있다. 한 주제를 두고 공부한 흔적이 도처에 보인다. 질문하고 정리하고 그것에 답하면서 맺음 하는 그의 땀들이 젖어 있다. 그래서 독자는 쉽게 이해하게 된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  ​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p11)


아프리카 남쪽의 바오밥나무는 2천 년 이상을 살아서 밑동에는 동굴이 뚫려도 푸른 잎이 반짝인다. 나무의 시간은 색에 실려서 흘러간다. 신록에서 단풍으로, 단풍에서 낙엽으로, 색은 모든 스펙트럼을 펼치면서 흘러가는데, 이 팔레트에는 이음새가 없고 꿰맨 자리가 없다.

그러므로 낙엽은 조락凋落이 아니다. 낙엽을 시들어 무너지는 애처로운 이파리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저 자신의 생로병사에 나뭇잎을 끌어들인 언사일 뿐, 나무와는 사소한 관련도 없다. 나무의 시간 속에서, 낙엽은 신생으로 나아가는 흐름이다.(p354-5)


- 김훈의 <연필로 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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