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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May 22. 2024

#은희경 작가

또 못 버린 물건들

드디어 은희경 작가다.

작년 12월 한참 이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다.


이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전에 버렸어도 무관했을 것들이

정리하다 보면 의외로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번에도 주저주저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인스타를 보다가 <또 못 버린 물건들>이라는

책 제목에 공감하면서 읽고 싶어졌다.   


작가가 누구지 하고 사진을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바로 은희경 작가였다.

그 이름 참 많이도 들었지만

그때까지 나는 그녀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 꼭 읽어야지, 해 놓고

이사를 하고서도 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들의 산문이나 에세이를 읽으려 한다.

작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그들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


이번에도 은희경의 산문을 먼저 읽었다.


바쁘게 돌아갔던 그녀의 일상이 팬데믹으로 멈추었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그녀가  

가볍게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거기서 그녀의 과거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썼던 소설의 장면과도 연결된다.


왜 그녀가 차마 또 그것들을 못 버렸는지에 대한

그녀만의 즐거운 변호이며 외침이다.


나에게도 그런 소중한 의미를 둘 수 있는

물건들이 몇이나 있는지를 돌아 보게 한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아무리 오래 해도 늘 초보자일 수밖에 없는 글쓰기(p8)' - 말이 되는 소리인가? 글쓰기의 고수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냥 겸손한 척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지금껏 만난 나름 글쓰기 고수라는 분들이 이런 고백을 하는 걸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에게 절망을 주기보다 오히려 위로가 된다. 고수들도 글쓰기 앞에 초보자의 자세로 임한다고 하니. 이제 막 시작한 나의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꾸준히 써 보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이 문장에 힘을 얻어 책 읽다가 이렇게 날 것 그대로 적어 본다.


별것 아닌 것 같은 물건들. 그것들을 보며 미소 짓는 은희경. 의미가 부여된다. 소중한 것으로 승화된다. 또 못 버린 물건들이 되는 순간을 엿보는 나에게도 미소를 머금게 한다.


히즈하라 맥주잔, OXO감자칼, 상아로 마든 구두 주걱... 계속 이어진다. 이런 반려 물건 이야기도 재밌다. 나의 반려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보는 시간도 유익함을 본다. 퇴직 후에 검은색 배낭이 나에게는 반려가 되고 있다.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간다. 그 속에 비상약, 책, 노트 등이 담긴다. 장 보러 갈 때도 유용하다. 감사하다.


'어렵사리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는데도 청탁이 전혀 없어 좌절한 내가 장편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외딴 절에 방을 구해준 것도 엄마.(p84)' 좌절의 시기에 힘을 준 분은 바로 엄마였다는 그녀의 고백에 마음이 뭉클해진다. 영원한 응원자인 엄마(부모). 자식들의 성공에 부모의 응원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너무나 쉽게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퇴직하고 나니 엄마가 얼마나 외로우셨을지.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서관에 같이 오고 있다. 식사도 하고 책도 읽고. 도서관에서 책 읽는 것이 처음이라는 엄마! 그 연세에도 열독하신다. 감사하다.


'누구나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완고함, 그걸 깨닫고도 합리화해버리는 이기주의와 안이함은 타인에 대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편견은 부끄러움의 영역이지만 폭력이 되면 그 것은 범죄인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다(p238) - 완고함? 나와는 상관없어. 나처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겠나? 이게 바로 자기합리화요,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완고함의 증거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그것을 깨어 주는 자극이 필요하다. 은희경은 공부가 답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이 자주 나온다. 나도 여기에 자유롭지 못하다. 아침에는 성경을, 오후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다. 내 마음의 지방 덩어리를 없애주는 영적 피트니스인 것이다. 꾸준히 하는 수밖에 없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돌이켜보면 지난여름의 나는 약간 무기력한 상태였다. 관계에 실망했고, 원고를 쓰다가 포기해야 했고, 피할 수 없는 변화와 잔걱정 때문에 불면이 잦았다. 의기소침하고 외로웠던 나라는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내 안에 이물질을 집어넣고 그것을 쫓아가도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나의 삶이라는 건축물에 색다른 블럭을 끼워넣음으로써, 새로운 분아의 초보가 됨으로써, 매너리즘과 헛된 욕심에 빠진 나로 하여금 첫마음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p146-7)


소설을 쓸 때에는 날카롭게 집중하고 또 수없이 생각하며 고치는 과정을 겪지만 이 산문에서는 내 머릿속에 쌓여 있는 잡다한 생각들을 가볍고 직관적으로 풀어놓았다. 일단 책상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디테일들이 떠올랐고 또 그걸 따라가다보면 술자리의 대화처럼 두서없이 흘러가기도 했는데, 굳이 정리를 해서 체계를 잡지 않고 흘러가게 두었다.(p240)


- 은희경의 <또 못 버린 물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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