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몹시 휘몰아치는 날이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바람까지 태풍급이다. 아파트 단지 안 도로에는 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로수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거센 비바람에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길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간간이 다니는 자동차도 앞이 보이지 않아 윈도 브러시를 정신없이 돌려야 할 것 같았다. ‘이런 날에 설마 음식 배달시키는 사람은 없겠지.’ 창밖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기 오토바이 한 대가 그 폭풍우 속을 뚫고 올라오고 있다. 우리 아파트는 지대가 높아 비탈길을 올라와야 한다. 배달 오토바이였다. 어떻게 앞을 보고 운전하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화가 치밀었다. ‘꼭 이런 날에, 이런 비바람 치는 시간에 배달시켜야 할까?’
저녁에 식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뜻밖이라 놀랐다. “엄마, 그건 엄마가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날씨 안 좋다고 배달시키지 않으면 어떡해요. 그럼 수입이 없는데. 또 오늘처럼 험한 날에는 위험수당이 붙어요.” 날씨가 안 좋으니까 나가기 싫어서 배달시켜 먹는 것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했다. 흥분해서 이야기를 꺼냈다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비 오는 날, 음식 배달을 시키는 것이 좋으냐 좋지 않으냐를 가지고 격한 토론이 벌어졌고 식구마다 생각이 제각각이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수필집 ⟪연필로 쓰기⟫에서 배달 라이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오토바이 라이더가 뒤차에 부딪혀 쓰러진 사고를 목격한 후 배달 라이더에 관한 취재를 한다. 길바닥에 흩어진 음식들을 바라보는 배달 라이더의 눈빛을 보며 먹고사는 일의 무서움에 치를 떨었고, 삶 앞에서 까불지 말고 경건해져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수필 <아, 100원>에서 이렇게 말한다.
"눈 오고 비 오고 덥거나 추운 날에 비탈길을 오르내리기 싫으면 배달음식을 주문하는데, 라이더들은 그 눈 쌓인 비탈길을 달려 올라가서 밥을 가져다준다. 밥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눈 쌓여서 미끄러운 비탈길,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꼬부랑 오르막길을 대신 오르내려 주고 눈비를 대신 맞아준다. 이래서 밥이 무섭다는 것이다."
2018년 그의 취재에 의하면 눈비가 올 때는 위험수당이 추가되는데 그 금액이 100원이다. 그나마 폭염은 제외다. 그는 시민의 안전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공동대표도 맡았는데 거기에서 한 배달 라이더를 만났다. 그 배달 라이더는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인 사람이다. 그의 요구는 묵살되었는데 여름 내내 정부는 ‘폭염 속에서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핸드폰 문자를 보냈다. 2018년은 살인적인 더위로 유명한 해였다. 6년이 지난 현재 100원이던 위험수당은 500원 이상으로 오른 것 같다. 날씨가 많이 안 좋을 때는 돈이 더 올라간다고 한다. 그 돈이 생명 수당인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생긴 후 배달은 일상이 되었다. 한국만큼 배달이 잘되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한다.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된다고 한다. 옛날 배달시켜 먹던 중국 음식뿐 아니라 피자, 통닭, 햄버거, 떡볶이, 커피까지 배달되지 않는 것이 없다.
며칠 전 신문을 읽다 이상한 기사를 봤다. 사회면을 크게 차지한 굵은 글씨의 제목은 “잠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 젊은 배달 라이더의 죽음에 관한 기사였다. 그는 작년에 우리나라 배달 라이더 중 수입을 가장 많이 올려 배달의 달인으로 뽑힌 사람이었다. 그는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오토바이로 음식을 배달했다. 하루 15시간에서 17시간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는 날 하루 없이 일했다. 사망 기사를 읽고 궁금하여 유튜브에서 그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았다. 잠은 언제 자느냐는 물음에 “잠은 부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헬멧 쓰고 10시간쯤 오토바이 타면 견딜 수가 없어 그 이상을 일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는 “습관이 되어 괜찮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라며 지금 터널에 있는 사람도 꼭 자기처럼 그 터널을 빠져나오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그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터널 속에 갇혀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터널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배달 기사가 되기 전에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했는지 모르나 절망 속에 있다가 그 어둠에서 벗어난 것이다. 몸으로 노력하면 한 만큼 쌓이는 통장의 숫자를 보며 그는 무언가 또 다른 꿈을 꾸었을 것 같다. 그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일한 송도 신도시, 도시의 숲 속을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골목을 누볐을 것이다. 밤이면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빌딩 불빛을 보며 그는 무슨 꿈을 꾸고 다녔을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잠의 안식마저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배달을 마치고 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버스가 치고 말았다. 신호 위반한 버스가 그의 꿈을 산산이 부수었다.
소년보호관찰 대상자를 상담하는 우리 상담실에는 배달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가장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음식 배달하는 일이라, 오토바이 운전 면허증만 따면 그 일을 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남자아이들의 로망이기도 했다. 도심의 도로 위를 바람과 함께 달리는 것은 그들에게 자유로움과 시원함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더 선호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주로 치킨집 등에 소속되어 배달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인지 아이들은 배달 대행 회사에 소속되어 음식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상담실에서 일하던 20년 동안 많은 오토바이 사고를 보았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병문안 갔다가 병원에 보호자 없이 혼자 누워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참 애잔했다. 그중에서 3명의 아이가 사고를 크게 당했다. 1명은 죽고, 2명은 중상이었다. 다 비 오는 날이었다.
나는 지금도 비가 많이 오는 날, 오토바이가‘쌩’하고 지나가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특히 눈이 오는 날이나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인간과 문학》 2024 겨울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