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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나눔의 역설-관계의 시학

(평론) 강이랑의 수필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를 읽고

by 권민정

브런치 글벗 중에 강이랑 작가가 있다. 그의 시와 글을 무척 좋아한다. 그가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라는 에세이집을 발행했다. 나는 바로 그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나는 수필가로서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어 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2년째 하고 있지만 그동안 습작한 것은 별로 없다. 그만큼 기초가 없기 때문에 지금도 열심히 공부 중이다. 올해 감동적으로 읽은 수필 중 1편을 골라 원고지 15매 이내로 평론을 쓰는 숙제가 생겼다. 나는 강이랑의 수필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를 골랐다. 평론을 잘 쓰지는 못했지만 에세이가 워낙 감동적인 글이라 브런치에 올린다.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

강이랑

우리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폭염이 극에 달하는 오후면 나는 근처 작은 도서관으로 피서를 간다. 작지만 전면이 그림책으로 빼곡히 채워진 그곳에서 독서를 하고 글을 쓰다 보면 순식간에 반나절이 지나간다. 문제는 토요일과 일요일이다. 가까운 카페에 가는 것도 한두 번이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친구들이 “이 더위에 어찌 지내? 우리 집으로 와” 하며 걱정한다. 토요일, 나는 중학교 동창 친구네로 피서를 간다.

친구는 점심으로 삼계탕을 사 주고, 마트에 들러 함께 먹을 복숭아 한 상자도 산다. 나는 친구의 양산을 꺼내 키가 큰 친구에게 씌워 주려고 애를 쓴다. 친구는 그늘로 걸어가니 괜찮다고 한다. 친구 집 거실에서 에어컨을 켜 놓고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나를 생각하며 준비한 과일과 음료수,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방 온도, 마음 편한 친구와의 수다는 졸음을 불러오지만 눕는 시간조차 아깝다. 천국이 따로 없다.

저녁이 되어 나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그사이 친구는 포도와 복숭아를 챙겨 건넨다. 우리는 함께 저녁노을을 보러 나간다. 친구네 동네 육교에서 보는 석양은 우리 동네 석양과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다. 내가 우리 동네 산책길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할 때, 친구는 이곳에서 석양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우린 친구다.

한참 석양에 몰두해 있는데 전화가 온다. 같이 그림책 공부를 하는 동네 지인이다.

“어디예요? 옥수수 삶았는데 먹을래요?”

물론 먹겠다고 답한다. 전철을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부랴부랴 짐을 내려놓고는, 친구가 준 복숭아 몇 개 챙겨 든다. 벌써 밤 아홉 시다. 나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지인 부부는 내게 껍질째 삶은 옥수수에 감자와 호박까지 든 쇼핑백을 건네고, 나는 복숭아를 내민다.

옥수수를 받은 곳에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최근 이사 온 또 다른 지인이 있다. 함께 공부하며 친하게 지내는 연구자 친구의 후배다. 옥수수를 나눠 주러 간다. 그런데 후배의 손에도 묵직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수건 꾸러미다.

며칠 전 친구가 후배에게 집들이 선물로 수건을 보냈는데, 잘못 주문해서 너무 많이 갔다며 나더러 하나 쓰라고 했던 메시지가 떠오른다. 수건을 받아 들고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얼굴이 땀범벅이다. 샤워를 하고, 옥수수 껍질을 벗겨 먹는다. 소금만 넣어 푹 찐 건강하고 소박한 맛이다. 밤 열 시가 넘었지만 나는 곧바로 하나를 더 먹는다. 그리고 방 한편에 둔 수건 꾸러미를 본다. 다섯 묶음짜리 두 개다. 오늘 피서를 가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묻는다.

“다음 주 토요일에도 너희 집에 가도 되니?”

“와. 언제든지 와서 쉬어 가.”

다음 주 토요일, 나는 수건 한 꾸러미를 들고 다시 친구 집에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쐴 것이다.

복숭아도, 옥수수도, 수건도 내 것이 아니었다. 살며시 선풍기를 꺼 본다.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바람마저 공짜로 얻은 오늘, 나는 부자다.


작가 약력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일본 바이카 여자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

어린이 문학 연구가, 번역가, 동화 작가, 시인. 브런치 작가

에세이집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시집 『바람 부는 날 나무 아래에 서면 』 출간



(평론)

가난과 나눔의 역설-관계의 시학


권민정

강이랑의 수필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는 하루 동안 이루어진 일을 일기 쓰듯 쓴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이 수필의 표면은 단순하다. 에어컨이 없는 작가가 폭염을 피하기 위해 친구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따뜻한 환대와 사소한 물건의 교환이 이어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글에는 일상의 서정 속에서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인간의 윤리가 숨어 있다. 그의 세계에서는 나눔이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따뜻한 상호성의 질서가 작용한다. 이 수필은 단순한 여름날의 일상 에피소드가 아니라 결핍 속에서도 관계와 나눔을 통해 행복을 창조하는 인간의 내면적 풍요를 보여준다. 강이랑이 보여주는 세계는 단순한 피서가 아니라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증여(gift exchange)의 구조를 따라 움직이는 관계의 시학으로 읽힌다.


이 수필은 소유의 논리를 전복하는 글이다. 강이랑이 묘사하는 부자 됨은 은행 잔고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교류와 순환, 나눔의 흐름 안에 존재하는 정서적 풍요이다. 강이랑은 그의 에세이집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의 <내가 캔 달래는>에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내겐 가난이 일상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그러나 그는 그가 나눌 수 있는 넉넉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는 마음 아픈 사람들의 삶에 빛을 발견하도록 돕는 먹을거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수필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에서는 하나의 사물이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건너가며, 관계의 온도가 이어지고 확장된다. 과일,옥수수,수건으로 나눔의 사슬은 이어진다. 이 나눔의 사슬은 일반적으로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나눠도 줄지 않고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가난과 나눔의 역설이다. 이 수필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세계관을 완성한다. “바람마저 공짜로 얻은 오늘, 나는 부자다.” 이 한 문장은 인간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가진 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소유가 아닌 수용, 획득이 아닌 감사, 경쟁이 아닌 연결로 도달하는 평화다.

강이랑의 문체는 매우 절제되어 있고 담백하다. 감정적 수사나 미사여구 없이 일상의 언어로 진실한 감동을 이끌어낸다. 이 점은 아동문학가로서의 시선과도 관련이 있다. 어린이의 세계는 단순하지만 순수하고 관계 중심적이다. 그 순수한 시선이 어른의 세계에 다시 빛을 던진다. 강이랑은 단 한 줄의 도덕적 설교 없이 나눔의 사소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적 기쁨을 보여준다. 관계 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윤리를 보여주고, 이 물질 만능의 세상에서 부의 본질을 재정의한다. 그의 세계는 따뜻하고, 시원하고, 충만하다.


레비스트로스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계승하여 인간 사회를 ‘순환의 구조’로 파악했다.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행위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관계를 생성하고 유지하는 상징적 언어라는 것이다. 친구가 대접한 삼계탕과 복숭아, 에어컨 바람, 그리고 웃음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증여의 언어다. 그것은 물질의 나눔이 아니라 너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신호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녀가 받은 것을 곧바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받은 복숭아는 곧 다른 지인에게 옥수수와 함께 나누어지고, 그 옥수수는 다시 또 다른 후배에게로 향한다. 이 일련의 흐름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교환의 순환 구조, 즉 관계망의 순환을 보여준다. 주기, 받기, 되돌려주기는 닫힌 고리가 아니라 나선형처럼 확장된다. 복숭아는 더 이상 단일한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를 매개하는 상징적 기호가 된다. 순환의 마지막에는 다시 “다음 주에도 너희 집에 가도 되니?”라는 말이 있다. 관계는 멈추지 않는다.


강이랑의 <친구 집으로 피서 가기>는 관계의 시학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고받음의 사소한 행위들 속에 숨은 인간적 진실, 그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복숭아와 옥수수, 수건과 바람은 모두 교환의 상징이다. 존재의 은유다. 즉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작가는 그것을 통해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한다. 이 수필이 독자에게 남기는 여운은 증여의 윤리가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이다. 이 수필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윤리적 산문이다. 아주 단순하게, 마치 일기 쓰듯 쓴 듯한 글이지만 이 수필의 구성은 탄탄하다. 작가는 잘 짠 구성 안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상징과 은유를 통해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타인의 호의를 부끄러움 없이 받고, 받은 것을 또 다른 이에게 건네며, 그 순환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그때 우리는 모두 강이랑의 말처럼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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