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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서술자와 문학의 힘

다정한 서술자

by 권민정

《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문학은 우리를 세상의 어떤 구체적인 사실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심리학적’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은 등장인물의 내적 논리와 동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른 방식으로는 제삼자가 도저히 파악하기 힘든 고유한 경험들을 드러내 보이고, 독자를 자극해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심리학적 해석을 유도합니다. 오직 문학만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존재의 삶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그들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고, 그들의 운명을 체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p.351)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는 1962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소설가이다. 《다정한 서술자》는 노벨상 수상 후 발표한 그녀의 에세이집으로, 여섯 편의 에세이와 여섯 편의 강연록이 실려 있다. 위 문장은 그녀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조 강연에서 한 내용의 일부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행동 동기를 이해하고, 타자에게 공감하며, 때로는 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기도 한다. 토카르추크는 좋은 책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탐욕, 자연을 존중하지 못하는 태도, 이기주의, 상상력의 결핍, 끝없는 분쟁, 책임 의식의 부재가 세상을 분열시키고 파괴 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중심에 문학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토카르추크는 글을 쓴다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낼 적절한 서술자를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신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 의미심장한 유대의 끈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며, 주체와 객체, 실재와 허구에 대한 통념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녀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만물이 조화롭게 연결된 생명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 연결성의 예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든다.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스페인 팔로스 항구를 떠난다. 선원들이 부두에서 분주히 오가고 갈매기들이 선착장을 오르내린다. 그러나 그 장면은 동시에 6천만 명에 달하던 아메리카 원주민 중 약 5천6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비극의 첫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 유럽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질병과 박테리아를 원주민에게 전달했고, 면역력을 갖추지 못했던 원주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어 무자비한 압제와 살육이 이어졌고, 대량학살이 수년간 계속되면서 신대륙의 토질이 바뀌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약 6천5백만 헥타르에 달하던 경작지가 정글로 변했고, 야생 식물의 재생 과정에서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소비되면서 온실효과가 감소하여 지구 기온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는 16세기 후반 유럽의 기후를 장기간 냉각시킨 ‘소빙하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과학적 가설 중 하나이다. 이후 유럽의 기근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이 사례를 통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나비효과를 설명한다.


그녀는 글을 쓸 때, 등장하는 모든 생명체와 사물,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과 인간이 아닌 존재에 관한 것, 살아 있는 것과 생명이 주어지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자기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까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자신의 내면에서 그것을 의인화하고 인격화해야 한다. 이럴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다정함'이다.


다정함이란 대상을 의인화하여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능력이다. 다정함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존재를 인격화하여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존재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선사한다. 다정함은 우리를 연결하는 유대의 끈을 인식하게 하고, 상대와의 유사성과 동질성을 깨닫게 해 준다. 다정함은 결국 이 세상이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연결되고, 서로 협력하고,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문학이란 결국 우리와 다른 모든 개별적 존재에 대한 다정함에 근거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다정함이라는 이 놀라운 도구, 인간의 가장 정교한 소통 방식 덕분에 우리의 다양한 체험들이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까지 다다르게 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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