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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침묵

침묵의 세계

by 권민정


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시간에는 침묵이 스며들어 있다. 침묵하면서 하루는 다른 하루를 향해서 나아가고 마치 어느 신이 자신의 정적 속에서 꺼내 놓은 것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 다른 하루가 나타난다. 침묵하면서 나날은 해(年)를 뚫고 나아가고 하루하루는 침묵의 박자 속에서 움직인다. 하루의 내용은 소란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침묵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모든 하루 속에 들어 있는 똑같은 양의 시간도 그 하루하루를 데려다주는 똑같은 양의 침묵만큼 그렇게 긴밀하게 하루하루를 결합시켜주지는 못한다.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또한 그 침묵으로부터 겨울이 그리고 여름과 가을이 온다. (P 128)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시간이다. 막스 피카르트는 그 조용한 틈을 ‘침묵’이라 불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간은 침묵을 품은 채 흐르고, 하루는 또 다른 하루를 향해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늘 소란 속에서 살면서도, 정작 하루가 열린다는 사실은 아무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곤 한다.


침묵의 세계는 그런 잊힌 자리들을 되돌려주는 책이다. 피카르트는 침묵을 단순한 말의 부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은 모든 것이 탄생하기 전 머물러 있는 첫 번째 공간이고, 존재가 자기 모습을 찾기 전에 지나가는 깊은 통로이다.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수많은 소음과 속도 속에서, 그는 이 근원의 자리를 다시 불러낸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샘물처럼, 침묵은 우리 안쪽에서 조용히 솟아오른다.


막스 피카르트(1888-1965)는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 에세이스트이다. 그는 현대 문명, 특히 기술 문명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소란과 소음으로 채우는지를 비판하며 인간이 본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침묵, 관조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사물은 침묵을 통해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 가운데 오래 머물게 하는 구절이 있다.

“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


이 문장의 의미는 봄은 기후 변화나 자연순환의 결과라기보다 더 근원적인 ‘침묵의 질서’ 속에서 온다는 뜻이다. 모든 생성은 침묵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 어떤 소리도 없고, 어떤 말도 없다. 씨앗이 자라는 소리, 봄이 준비되는 소리, 이 모든 것은 침묵의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봄은 단순한 계절의 이동이 아니라 존재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며, 그 탄생의 장소는 침묵이라는 것이다. 또 막스 피카르트의 문장은 자연에 대한 묘사이면서 동시에 인간 내면에 대한 은유이다. 겨울은 고통, 정지, 침체이며 봄은 회복, 성장,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침묵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 치유의 자리를 의미한다.

그의 문장을 음미한다. 새로운 삶은 외적인 사건이나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침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적 문장 또 하나.


침묵은 이름할 수 없는 천 가지의 형상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리 없이 열리는 아침 속에, 소리 없이 하늘로 뻗어 있는 나무들 속에, 남몰래 이루어지는 밤의 하강 속에, 말없는 계절들의 변화 속에, 침묵의 비처럼 밤 속으로 떨어져내리는 달빛 속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속의 침묵 속에. 이러한 침묵의 모습들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럴수록 이 이름 없는 것들로부터 대립물로서 생기는 말은 더한층 분명해지고 확실해진다. (중략) 말은 다만 침묵의 다른 한 면일 뿐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침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진정한 말은 침묵의 반향인 것이다. (pp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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