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얘 작정하고 적어도 올해 말 까지는 휴식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바쁜 일상 중 짬을 내어 저녁시간이나 주말에 반짝 쉬는게 아닌, 몸과 마음 깊은 곳까지 재충전하는 그런 시간. 회사를 나온 후 다음 단계에 대해 걱정하거나 조바심내지 않고 정말 그냥 맘 편하게 푹 쉴 예정이다.
지난 내 삶을 돌아보면, 5년만에 한 번 꼴로 깊은 쉼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상황적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어 자연스럽게 공백이 생기든지, 마음이 너무 지쳐 휴가를 내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든지, 계기야 어찌됐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쉬고 나면 복잡하던 생각도 어느정도 정돈이 되고 마음도 평안해진다.
단순히 몸을 쉬는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나의 내면속 깊은 곳 까지 회복시키는 깊은 쉼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까지 나만의 단계와 규칙이 있다.
1.
일단 고삐를 풀어준다. 처음 며칠은 신나라 내맘대로 생활해 본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를 아침 식사대신 먹기도 한다. 오후에 졸리다 싶으면 무한정으로 낮잠을 자기도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하기도 한다. 며칠 내내 집안에서 잠옷 차림으로 생활하는건 기본이다.
2.
이런 무절제한 생활을 며칠 하다보면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불규칙적인 수면 패턴으로 인해 멍해저버린 정신으론 내가 휴식기간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걸 알게 된다. 절제된 생활에서 오는 안정감과 리듬을 자연스럽게 몸이 찾기 시작한다.
3.
하루에 대략적인 스케줄을 잡아준다. 나같은 경우엔 아침에 일어나 바로 강아지와 산책을 한 후 QT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정신이 맑은 아침 시간에 글쓰기를 하고, 몸이 나른해지는 오후엔 운동을 한다. 꼭 해야 하는 업무는 저녁 6시 전에 마무리를 하며 저녁식사를 마친 이후엔 책이다 드라마를 보는 등 정적인 활동을 하는 편인다. 이렇게 대략적인 스케줄이 있어야 하루를 나름 알차게 보낸 느낌이 들고 게을러지지 않는다.
4.
아무리 쉬는 기간이지만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매일 비슷한 시간으로 잡는 건 매우 중요하다. 수면 패턴이 다음 하루의 에너지를 좌지우지 하기 때문이다. 잠을 잘 자야 몸과 정신도 상쾌하고, 축 늘어지는 시간이 아닌 충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5.
일상이 바빴을땐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건, 어쩌면 무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기간의 휴식 시간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내가 좋아하게 될 거라곤 상상치도 못했던 취미생활을 해보면서 여태 모르고 살았던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같은 경우 이렇게 십자수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됬는데, 단순 수작업인 십자수를 하며 마음이 고요해졌고 매일 글쓰기를 통해 꾸준함의 강직함을 알게 되었다.
6.
아름다움에 날 노출시킨다. 야외로 나가 예쁜 풍경을 보기도 하고 미술관에 가서 마음것 예술품을 감상하고 오기도 한다. 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데, 런던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세계 거장들의 작품들을 무료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에 푹 젖어 있노라면, 내가 너무 내 생각에 빠져 일상의 기쁨을 놓치고 있었구나 깨닫게 된다. 조금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미처 잊고 있었던, 찬란한 하늘이 펼쳐진 다는 것.
7.
일을 해야한다면 모아서 한꺼번에 한다. 여기에서의 '일'은 회사일이 아닌 전기세를 내는 등, 일상생활이 돌아가기 위해 해야하는 잡업무를 이야기 한다. 나름 워라벨을 잡아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쉬는 시간과 일을 하는 시간의 경계를 잡아주지 않으면 쉰듯 안쉰듯 하루가 애매해져버린다.
8.
주기적인 운동은 필수다. 몸이 상쾌해야 하루가 활기차고 정신이 맑아진다. 이렇게 맑은 정신으로 쉬는 시간을 보내야 쉼의 끝에 생각의 명확함과 내면의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삶의 방향성이 재정립되고, 고민하고 있었던 혜안들이 나오는 단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