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업로드
희미하기만 했던 어릴 적 기억의 한 단편이 노년에 이른 지금에 와서야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개구진 얼굴에 땟국물이 흘러내릴 때까지 함께 놀던 친구들이 땅거미가 길게 드리우면 하나둘 씩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쯤이면 난 알 수 없는 무게에 눌린 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웃음기 가신 표정으로 대문 앞에 선다.
난 이 대문이 싫다.
나무로 만들어진 우리 집 대문은 어린 나의 눈에 높은 성벽과도 같았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흔적을 지닌 녀석은 문을 열 때마다 삐~~ 익 소리를 내며 여린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없다...
아무도 없다.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다.
배가 고플 만도 한데 밥보다 엄마의 품이 고프다. 그만큼 어머니 .... 당신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 시절 시장 한쪽 모퉁이에서 야채를 팔며 치열한 삶의 시간들을 보내었던 당신도 내가 보고 팠을까?
당신이 내 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갈 때에도 이 질문을 당신께 묻지 못한 것은 언제나 당신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툇마루에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어느덧 시간도 마음도 서서히 깊은 어둠으로 덧칠되어 갈때 쯤 서늘한 두려움에 방과 부엌 그리고 마당의 불을 켠다 그러나 혼자라는 서늘함은 가시지를 않는다.
마음 한쪽 드리워진 서늘함의 그림자는 전등 불빛으로도 밝히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제 그 그림자는 노년이 된 나에게 당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간다.
그제서야 부엌 딸린 방 안으로 들어서면 한쪽 구석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양은 밥상"이 있다. 이 "양은 밥상" 위에 있는 보자기를 들추어내면 식어빠진 된장찌개나 고기하나 없이 끓인 김치찌개와 두어 가지 반찬이 놓여있다. 어린 나였지만 익숙하게 곤로 불에 불을 댕겨 찌개를 끓이고, 찬장 속에 있는 밥을 가지고 온다
그제야 작은 궁둥이를 바닥에 붙이고 입보다 더 큰 숟가락으로 밥 한 숟갈을 넘겨본다.
이른 새벽 바쁜 걸음에도 엄마가 차려놓은 저녁 밥상이다.
아마 당신은 부엌 한쪽에서 궁둥이조차 붙이지 못하고 서신 채로 김치 한 조각이나 멸치 볶음에 밥을 드셨겠지!
그럼에도 당신의 눈은 자식이 먹을 "양은 밥상" 위에 놓인 음식을 보셨으리라!
우리 엄마!
이 땅에서 자식과 함께 호흡을 하는 날 동안 자식을 향해 사랑한단 말 한번 없으셨고
기억에 날 만큼 안아 주신 적 없으시지만 식은 된장찌개에서 찬장 한쪽 구석에 놓인 밥을 담은 그릇 위에 먼지라도 들어갈까 염려되어 올려놓은 사발에서 자식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아갑니다.
어릴 적 혼자 먹은 그 음식의 맛과 그리움이 코 끝에 인이 박힌 듯 박혀있지만 도저히 그 맛을 찾을 수가 없다.
벌써 고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에서 살아온 세월이 18년이 되었다.
타국에 살다 보면 가끔 두렵고 외로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엄마의 품이 그립다.
엄마의 품이 그리워지면 당신이 "양은 밥상" 위에 차려 놓은 식어버린 그 찌개 냄새가 코끝을 맴돈다. 나에게는 당신이 차려준 그 음식이 품이고 사랑이었다.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날이면 부엌에 들어가 코에 인이 박힌 엄마의 맛을 떠올리며 칼질을 해보지만 그저 내가 만든 된장찌개 일 뿐이다.
참 이상하다.
어릴 적 기억은 나이가 들면서 커튼이 걷힌 바깥 풍경처럼 선명한데 언제부터인지 엄마와 헤어진 날과 헤어진 순간들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릴 적 아이들은 혼란스럽거나 놀랄 일들을 만났을 때 맞서 싸우기보다는 엄마의 품으로 달려간다.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품이 그립다.
난 아직도 무섭고 두려운 세상을 마주 서야하는 시간들을 살아가야 하기에 달려갈 엄마의 품이 그립다.
당신이 …
차려 놓은 그 밥상의 향기가 내 몸에 짙게 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