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barawa에 핀 눈물 꽃 2

by Benih

암바라와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전날 밤, 나무 향이 배어 있는 침대에서 깊은 잠을 통해 육신의 피로를 덜어낸 탓이리라.

이제 목적지인 암바라와(Ambarawa)를 향해 가야한다. 굽이 굽이 돌아서 가는 중부 자바의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원을 넘는 일은 쉽지 않다.


쉽지않은 운전에 지인도 긴장을 하는 탓인지 말이없고, 덩달아서 침묵하는 나의 목도 타들어가는지 생수로 목을 축여본다.

이제 이 고원을 지나면 동쪽으로는 수라바야, 남쪽으로는 솔로와 족자카르타로 이어지는 길이다. 드디어 고원을 벗어나 평원으로 접어들자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20년 가까이 이땅에 살았으면서도 신기하기만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의 한쪽에서는 모내기가 한창인데 그 옆에서는 벼를 추수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은 존재가 있다 시간의 장막에 덮인 채 여전히 경계병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거대한 군사 요새가 그 실체이다. 육각형 성냥갑을 닮은 벽돌 건축인 암바라와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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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바라와 요새는 네덜란드가 식민 통치 시절 중부 자바를 지배하기 위해 세운 인공 건축물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요새의 주인은 바뀌고 잔인하고도 폭력적인 운명으로 흘러간다,


일본군은 인도네시아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럽인들을 암바라와로 집결시키고, 이 요새를 포로수용소로 개조하였다. 수용 인원이 3만 명을 넘었다 하니, 자신들이 세운 요새에 스스로 갇혀야 했던 유럽인들의 비통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식민지 시대의 전쟁사가 남긴 비극 중 하나로 치부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는 우리 민족, 조선 소녀들의 피지 못한 눈물 꽃도 함께 묻혀 있다.


조선을 지배하던 일본은 유럽인 포로를 감시할 병력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인들을 강제로 혹은 달콤한 말로 속여 군인으로 모집했다. 그렇게 동남아시아 전역에 배치된 조선인 출신 일본군은 3천여 명에 이르렀고, 이 암바라와 수용소에도 700명에서 1,000명가량의 조선인이 배치되었다고 전해진다.

더 참담한 사실은, 요새에서 불과 23미터 떨어진 곳에 일본군을 따라온 조선인 위안부 여성들의 거처가 나란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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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바라와에는 위안부를 기리는 작은 기념비나 기록조차 없다.

조선의 딸들은 일본군의 군복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와 전쟁의 가장 낮고 암울한 자리에서 꽃다운 시절을 눈물로 꽃을 피우며 살아야 했다.


함께 징병되어온 조선인 병사들과 그들은 어떤 말과 눈빛들이 오고갔을까?

연민이었을까?

체념이었을까?

아니면 침묵으로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였을까?


전쟁이 끝이나고 그들은 돌아갔지만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다.

역사조차 그들의 이름과 아픔에 눈을 감았다.


그들의 고통스런 진액과 눈물이 고였던 그 자리에 무너져 가는 건물과 잡초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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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자바 땅, 초록의 암바라와 평원에 서 있다.

역사를 인지하고 돌아보면 참담한 아픔이 겹겹이 쌓여 있는 땅이지만

역사를 배제하고 바라보는 이땅은 독특한 건물 양식과 세월의 흔적이 지문처럼 남아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저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아름다운 미소와 멋진 자세로 사진을 찍고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지난밤
나무향이 깊게 베인 호텔에서 숙면을 취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던 나는 이제 역사의 무게를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곳에서부터 멀어져 간다.


역사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 땅에도 여느 땅과 다름없이 꽃들이 피어있다.

예쁘고 찬란한 꽃이지만 ......

오늘은

그 꽃들이 나에겐 마르지 않는 눈물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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