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여행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엘 찰텐에 머문 셋째 날, 피츠로이를 올라야 하는데 피츠로이는 왕복 9시간 이상 걸린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버스 시간에 맞춰 돌아와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 피츠로이 등반을 강행해야 할지 고민했다. 더구나 전날 30km 넘는 산길을 걸어서 근육도 피곤한 상태였다.
많은 일행은 피츠로이 등반을 포기했지만, 남편과 나는 피츠로이에 오르기로 했다. 호텔 조식을 포기하고 새벽 6시에 출발하기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고 배낭을 꾸렸다.
함께 가기로 했던 조원에게서 출발 시각을 4시로 앞당기자는 연락이 왔다. 해가 떠오를 때 불타듯 붉게 보이는 피츠로이가 장관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벽 산행 계획이 없던 우리는 헤드 랜턴도 없이 새벽 4시 출발했다. 거리를 벗어나 산에 들어서니 가로등도 없고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두웠다. 남편이 뒤에서 핸드폰 불빛으로 내 발밑을 비춰줘서 겨우 걸었다. 어둠 속에서 걷기에 급급했던 당시에는 남편 손이 얼마나 시린지 팔이 얼마나 아픈지 신경 쓰지 못했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못 했다.
피츠로이 정상을 앞두고 가파른 돌산이 나타났다. 근처에 이르니 사방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출발했던 일행 중 조장은 이제부터 각자도생이니 알아서 오르자고 했다. 상대적으로 걸음이 느린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고도도 높고 제각기 다른 크기의 돌덩이로 이루어진 가파른 산을 헐떡이며 올랐다. 심장이 터질 듯했다. 한 걸음 내딛는 것 자체가 인내심 테스트였다. 몇 걸음 오르고 쉬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올랐다. 마지막 등반은 정말 힘들었다.
드디어 정상이다. 등산복 브랜드 파타고니아에 그려진 그 산이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해는 이미 다 떠올라 붉은 바위산은 못 봤지만, 주황빛 여운이 도는 산에서 우리는 성취감에 흠뻑 젖었다. 날카로운 바위산과 그 앞에 펼쳐진 호수는 이 세상이 아닌 듯 여겨졌고 가슴 가득 뜨거운 감동이 밀려왔다.
정상은 무척 추웠다. 기념사진을 찍고 감격을 나누다 보니 손도 금방 곱고 콧물도 흘러내렸다. 해가 드는 곳에서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잠깐 쉬었다. 더 머물고 싶지만, 몸이 얼 것 같이 추워서 뿌듯하고 흡족한 마음을 안고 내려왔다. 피츠로이 등반까지 마치고 나니 해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오후에 우리 짐이 있는 엘 칼라파테 호텔로 이동했고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우수아이아로 향했다. 계속되는 강행군에 몸은 지쳤지만, 다시 볼 수 없을 남미의 신비하고 아름다운 산을 올랐다는 만족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한국에서라면 이렇게 몰아치며 매일 연속으로 큰 산을 오르지 않겠지만, 멀고 먼 남미 여행인 만큼 무리한 산행을 했고 그래도 모두 무사히 마쳤다. 홀가분하면서도 뿌듯했다. 남은 일정 여유롭게 여행하며 즐기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