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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백 Feb 02. 2024

38. 곡식 창고 ‘오레오’ (5월 12일 금)

40일간 산티아고 순례길 그림일기 

파라스 데 레이 Palas de Rei ~ 아르수아 Arzua      

  갈리시아 지방으로 온 이후 추워져서 패딩을 입고 비니도 썼다. 30km 정도 걸어야 하는 날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순례길 표지석이 자주 나타났고 남은 거리 숫자를 볼 때마다 조바심이 일어났다. 

  갈리시아 지방에는 집마다 조그만 건물이 하나씩 있고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땅에서부터 높이 떠 있고 벽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건물 용도가 궁금했다. 집마다 내려오는 사당, 시신 안치 장소, 곡식 창고 등 상상의 나래를 펴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내기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검색하니 ‘오레오’라고 부르는 곡식 창고였다. 내가 이겼다. 이겼다고 좋아하는 나를 보며 남편도 웃고 우리는 함께 웃었다.    

                                             

갈리시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곡식 창고 ‘오레오’

  종일 작은 산을 오르내렸다. 오늘 목적지 아르수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가까운 곳으로 순례자들의 휴식을 위해 조성된 특화 도시란다. 새로 지은 알베르게나 호텔이 많고, 다양한 브랜드 대형 슈퍼마켓, 식당도 다양했다. 그동안 지나온, 오래된 마을과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머문 알베르게(Albergue Turistico Ultreia)도 새 건물이고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지만 순례자를 위한 주방이 따로 있어 얼마든지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날씨도 궂은 데다 많이 걸어서 다른 날보다 유난히 피곤한 우리는 사 먹기로 했다.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내려가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다. 남편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선택했는데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한 입 맛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먹어 보란다. 맛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스페인에서 먹었던 음식 중 최고다. 내가 선택한 샐러드와 햄버거도 맛있는데 특히 샐러드는 그동안 사 먹던 참치가 들어있는 샐러드와는 차원이 달랐다. 아르수아는 잠자리 먹거리 모두 순례자에게 최고인 동네다.

  저녁이 될수록 점점 추워지며 바람도 거세지고 비까지 오락가락하며 날씨가 음산하다. 보통은 저녁때 성당에도 가고 마을도 한 바퀴 둘러보지만, 우리 둘 다 피곤하고 남편은 무릎도 아프다고 해서 그냥 따뜻한 숙소에서 쉬었다. 이틀만 걸으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순례길도 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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