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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솜 Sep 26. 2023

지나간 너와의 연애는 초등학교 때 내가 적은 일기장같아

지나간 정거장에게 올림.

웬만하면 초등학생들이 쓴 일기장은 대게 솔직하다. 어른이 되고 뒤돌아보니 언제 또 이만큼 솔직할 수 있을까 싶다. 방학숙제를 밀려 개학 전날 일기를 몰아 쓰기도 했지만. 내가 어떤 날 어떤 일을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도, 전반적인 감정, 느낌, 분위기는 솔직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날씨는 대부분 맑음 이었다.) 그 솔직함이 부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우리가 가끔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그 당시에 완벽하지 않지만 순수한 내가 있기 때문일까?


초등학생 때 적은 일기장엔 얼마나도 그 솔직함이 듬뿍 묻어있는지. 엄마한테 혼나고 울면서 쓴 일기는 종이가 눈물에 젖어 군데군데 봉긋했다. 그리고 맘에 안 든다고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다시 쓴 일기도 많다. 분명 무언가가 쓰였는데, 깨끗하진 않지만, 흔적은 남았다. 그 위로 또 나의 다른 이야기가 쓰인다.


애석하게도, 가끔 난 내가 만난 전 연애들을 생각한다. 근데 이 감정의 조각들은 뭔가 지나간 사람과의 재회를 원한다거나 그때 그 사랑과 연애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뭐랄까 정말 초등학생 때 적은 일기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들고 있는 이 일기장엔, 무언가 분명 어떤 수많은 이야기들이 쓰였었는데, 또 힘껏 지우개로 지워서 또렷하지는 않다. 무슨 이야기였는지 이제 사사로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드문드문 지우개로 못 지운 이야기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그때의 감정이라던가 생각이라던가. 이제는 없는 과거의 내가 지나간 발랄한 창피함이랄까.


내게 올 그 다음 사람에겐, 내가 지금까지 썼다 지운 이 일기장을 들고. 조금은 감추고, 숨기고, 연필을 들라나?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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