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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경 Oct 18. 2024

아들의 실수 : 부모의 부재와 역할의 한계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는 것은 누구나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 줄 알았다. 나도 그렇게 믿으며,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선택했고, 남들처럼 아들딸을 낳아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   

  

행복한 가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살면서 깨달았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걸.     




아이를 낳으면 저절로 큰다는 어른들 말씀은 옛말이었다.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무수한 사랑과 정성은 물론이고, 나 자신의 희생은 필수였다. 거기다 경제력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게 부모였다.   

   

아무것도 없이 만나 양쪽 집안 도움 없이 학원을 운영하며 아이 둘을 키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내 자식들은 나처럼 키우지 않으리라.’라는 생각에 나만의 방식을 고집했다.     


이유식 하나도 손수 만들어 먹어야 직성이 풀렸던 나. 딸에겐 일회용 기저귀보단 천 기저귀를 고집한 남편. ‘아이는 둘은 있어야 한다.’라는 나의 이상한 신념을 지키며 가족을 꾸려갔다. 이 모든 개똥철학이 우리를 더욱 지치게 했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기도 전에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사건이 찾아왔다. 유방암이라는 큰 손님이 내 몸에서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던 거다. 예상치 못한 불청객은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엎어놨다.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인 아들딸은 당장 식사부터 문제였다. 유방암은 나만 힘들게 하지 않았다. 엄마와 떨어진 어린 자녀들에겐 채울 수 없는 마음의 빈자리가 생겼고,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남편은 집안 살림과 양육을 떠맡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유방암은 우리 가족을 다시 한번 흔들어 놓았다. 5년을 집에만 있던 남편은 새로운 일을 하겠다며, 힘든 트럭 일을 3년 전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딸은 동생을 보살피며, 식사 준비와 부엌일을 도맡아 했고, 아들은 빨래, 설거지, 휴지통 비우기 등 집안일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책임을 짊어지게 한 것은 아닌지 미안함이 뒤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일찍 나가는 남편은 평상시엔 아들을 등교시키고 나가지만, 시험 때나, 학교 행사로 아들의 등교 시간이 바뀌면 스스로 챙겨야 했다. 대학생인 딸은 그래도 어른이라고 자신의 스케쥴을 조절할 줄 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의 2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는 날, 우리는 있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들이 시험시간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늦잠을 잔 것이다. 아침부터 남편의 톡이 어째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본 병원에 Bone Skin 검사를 위해 달리는 차에서 가족 톡이 울렸다. 남편이 “아침에 아들을 깨우지 않고 나왔어.”라는 문자를 보자 마음이 싸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식을 믿었기에 “걱정하지 마!”라는 답으로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Bone Skin 검사를 위해 방사선을 내 몸에 주입했다. 간호사는 3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나는 근처 사우나에서 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 병원으로 오면서 핸드폰을 켜자, 딸의 톡에서 내가 믿고 싶었던 모든 예감을 깨트렸다.     


“엄마! 어디야? 왜 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아? 엄마 아들 12시 넘어서 일어났데!”라는 문자가 내 머리를 하얗게 만들었다.      


딸에게 전화했다. 딸은 진단서 가지고 가면 기말고사의 80%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는 힌트를 주었다. 마음이 급한 나는 아들에게 전화했다.     


“아들! 지금 어디니?”

“집!”     


“선생님과 통화했니?”

“어”     


“뭐라고 했어?”

“늦게 일어났다고 했어!”     


“정말? 선생님은 뭐라고 하셔?”

“알았다며 이따가 통화하자고 하셨어!”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답답한 아들을 어찌하면 좋을지 가슴만 답답했다. 나는 우선 담임 선생님께 전화했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오늘 아이가 사고를 쳤네요? 며칠간 감기로 힘들어하더니만 일을 저질렀네요. 제가 몸이 많이 안 좋아 병원에만 있다 보니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혼자 아픈데 말도 못 하고 고생한 거 같아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선생님의 전화를 기다리다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하는 도중 전화벨이 울렸다. 받을 수가 없었다. 검사를 마치자마자 선생님께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아들에게 톡이 와 있었다. “선생님이 진단서 가지고 오면 기말고사 80% 인정된다.”라고.     


아들과 통화하는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다시 한번 차분하게 대화법을 아들에게 가르쳤다.     


“아들아! 늦게 일어나서 놀랐지? 그렇다고 선생님 전화에 늦잠 잤다고 한마디만 하면 어떻게 해? 며칠째 감기로 고생하다 어제 약을 먹고 잤는데 아침에 알람을 못 들었다고 상세하게 말했어야지. 변명이지만 사실이잖아? 선생님이 너 말만 들으면 정말 한심하고 기가 막히지 않겠니? 그러면 어떻게 처리가 되겠어?”     


“무단결석으로 처리되고 0점 처리되겠지?”라고 태평하게 말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 화가 났다.     


“0점 처리되면 어쩌려고 그래? 거기다 무단결석까지?”

“상관없어! 괜찮아!”라는 그 한마디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토록 단순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나는 무엇을 가르쳐 온 것일까?     


“엄마가 전날 일찍 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몇 시에 잤니?”

“새벽 2시”     


“왜 그렇게 늦게 잤어? 분명 11시 전에 약 먹고 자라고 했잖아?”

“약 먹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와서 핸드폰보다 늦었어.”라는 말에 내가 아들을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선 병원부터 가라고 했다. 병원에 도착한 아들에게 의사 선생님을 바꿔 달라고 했다.     


선생님께 나는 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감기가 심했고, 시험 기간이니 링거를 맞춰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진단서가 필요하다고 부탁드렸다. 모든 일이 정리되자, 나를 돌아보았다.     




그토록 내가 사랑하는 아들인데,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아들은 이처럼 큰일을 왜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걸까?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의 물리 시험을 펑크내고도 걱정하지 않는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      


나의 오랜 부재가 아이의 마음에 무언가를 빼앗아 간 걸까? 아니면 아빠의 성격을 물려받은 탓일까? 아들은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유전적인 걸 고칠 수 없는 걸까? 나와 남편 사이의 갈등이 커질 때마다, 그 모습이 아들에게서 비칠 때, 나는 가슴이 아팠다.     


내가 아들에게 지나치게 자존감을 심어준 건 아닐까? 너무나도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지금은 내가 모든 걸 막아주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항상 과하게 칭찬하고 자존감을 높여준 게 딸은 잘못이라고 한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무라면, 이제는 나도 아이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만이 진정 옳은 일일까? 아니면 그들 스스로 세상을 마주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고 있다.      


202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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