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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 “독한 년”이라고 욕하며 떠나는 그날까지.

by 김인경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라는 속담처럼 자신의 것이 충분해도 타인의 작은 것을 부러워한다. 결국, 이러한 탐욕은 또 다른 불행과 죄악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요즘 나는 기적적으로 몸이 많이 호전되었다. 여전히 암의 움직임이나 통증을 느끼긴 해도, 이제는 휠체어 없어도 걸어 다닐 수 있다. 오른팔 또한 끊임없는 통증은 여전하지만, 병원 생활을 이어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허리의 암 덕에 통증도 예전보다 심해졌지만, 매일 오일 마사지와 병원 치료, 내가 가지고 있는 기계들을 이용하면, 견딜만하다. 이젠 죽음의 덫에선 벗어난 느낌이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덕에 체력적으로는 비교적 건강하다. 게다가 지난 10년간 나를 괴롭혀 왔던 생리도 이제는 나오지 않는다. 병원 밖에서는 일상이 어렵겠지만, 병원 안에서의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치료에 시달리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잠시도 암은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계속에서 암이 싫어하는 행동이나 약물치료, 기계 치료는 물론 음식도 최대한 가려서 먹어야 한다.




얼마 전, 엄마가 내 병실에서 3박 4일간 머물다 가셨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보시고,


“네가 왜 살아 있는지 알 것 같다. 눈뜨면서 잘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치료만 하는구나! 힘들지 않니?”라며 걱정하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웃었다.


“엄마! 왜 안 힘들겠어? 나도 쉬고 싶지. 사람들은 내가 병원에서 하루 종일 논다고 생각하나 봐? 그러면 난 벌써 죽었을 거야? 항암치료도 안 하고 오직 병원에서 하는 면역주사로 2달 선고받은 사람이 이렇게 살 수 있겠어요?”


엄마! 난 자는 시간도 아꼈어. 암이 싫어하는 게 뭔지 매일 생각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막말로 내가 죽으면 끝이잖아. 하지만,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더라고. 너무 아파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알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는데, 움직일 수 있어야 올라가지? 약으로 간단히 죽고 싶었지만, 내가 어디서 약을 구해? 그때 생각했어. ‘죽지도 못할 거 죽을 만큼 노력해 보자.’라고.


그때부터 암과의 전쟁이 시작되었어. 우선 ‘암은 뜨거운 걸 싫어하니깐 어떻게 열을 암에게 전달해 줄까?’ 난 주열기, 일라이트, 발 고주파, 파라핀, 찜질팩, 라파 등 여러 온열 기구를 항상 곁에 두고 쉬지 않고 돌아가며 사용했어.


파라핀으로 1~2시간씩 땀을 빼면 오바이트가 쏠려. 그러면 누워서 두 개의 주열기로 암 부위에 놓고 쉬었어. 그러다 살만하면 또 일어나, 발 고주파를 발에 올려놓고, 일라이트는 47도로 올려 암이 있는 맨살에 놓았어.

이때 흘리는 땀은 거짓말 안 하고 바가지에 담으면 한 바가지 이상일 거야. 계속에서 수분을 보충해야 하지만, 맹물만으론 내 체력을 유지하기 힘들었어. 나는 단 음료가 필요했지.만, 엄마도 아시겠지만, 일반 음료수에 있는 당은 암이 제일 좋아하잖아.


나는 꿀에 과일과 생강청 등 여러 가지를 넣어 청을 만들어서 차로 만들어 마셨어. 그러면 많은 땀을 흘려도 견딜 수 있거든. 그리고 틈틈이 공진단과 경옥고, 녹용 보골단, 보약 등을 먹으면서 체력을 유지했어.


아버지를 닮아 술을 좋아하는 나는 이렇게 땀을 흘릴 때, 가끔은 칵테일도 만들어 한 잔씩 마시기도 했어요. 적당한 알코올은 몸에 좋다고 하잖아?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고 마지막엔 욕조에 소금을 풀어 번식욕을 하면 새벽이 되어버려. 그래서 나는 잠을 잘 자야 해. 하지만, 암 환자가 잠을 잘 자기란 쉽지 않아.

고민했어.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발이 따뜻해지면 그래도 잠을 좀 자더라고. 그래서 이 더운 날에도 양말 신고 가벼운 온열 장판을 발만 감쌌지. 그러면 어느 순간 조금씩은 자더라고.


근데 엄마는 새벽부터 움직이면 내가 어떻게 자라고 그래?”라고 웃으며 말하자, 새벽에 세수한 엄마는 미안해하셨다. 나는 거기다 덧붙였다.


“엄마! 모든 병의 치료에 가장 중요한 건 마사지야. 난 아침마다 아줌마 불러서 2시간씩 내 기계로 해달라고 해. 하지만, 지금은 엄마가 있으니 안 하는 거지. 그것까지 하면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


근데 엄마는 매일 허리 다리 아프다면서 한 게 뭐 있어요? 같이 있어 보니, 낮잠은 수시로 주무시고, 새벽엔 잠 안 온다고 왔다 갔다 하데. 집에서 엄마가 이러면 오빠가 힘들어. 그러니 엄마도 낮에는 움직이시고 밤에 주무세요.


어떤 병이든 오면 엄마가 그 병을 이기려고 노력해야지. 아프다고 누워만 있으면 살만 쪄. 살은 만병의 근원이야. 그러면 아픈 곳은 더 아플 거고. 그럼 더 게을러지고. 악순환의 반복이야.


엄마! 난 다리가 아파 움직이지 못할 때도 방에서 혼자 고주파, 파라핀, 주열기, 원적외선, 근적외선, 라파 등 여러 의료기기로 계속해서 암을 괴롭혔어. 안 그럼 내가 아프고 고통스러웠거든. 지금의 내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야.


병원에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치료는 한계가 있어. 의사에게 우리는 자신들 돈 벌어주는 존재 이외에는 없어. 이론적으로 배운 항암제나 방사선으로 치료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그런 치료는 모두가 일시적이고 결국엔 항암 독약에 치여 죽더라고.


난 의사를 원망하지 않아. 그들도 의사가 되기 위해 30년 이상 공부하고 잠 못 자며 노력했잖아. 그렇게 노력해서 전문의가 되고 교수가 되었으면, 거기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지.


한 달에 한두 번 병원 가면, 그들은 우리와 고작해야 5분도 이야기 안 해. 어쩔 땐 1~2분 만에도 상담이 끝나. 이처럼 교과서적인 의사들이 우리의 고통을 알까?


몰라 엄마! 결국은 고통은 아픈 사람이 스스로 이겨내야 할 싸움이더라고. 환자는 스스로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치료하면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지, 모든 걸 의사에게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거지.


엄마도 아프면 오빠에게 병원만 가자고 하지 마시고, 노력을 해봐요. 거실도 돌아다니고, 옥상도 올라가서 햇볕도 쬐시고. 진통제도 조금씩 줄이시고.”라고 말하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근데, 이 많은 기계는 병원에서 주는 거니?”라고 물어보는 엄마를 보며 나는 웃음이 팡 터졌다.


“엄마! 어떤 병원에서 이 비싼 기계들을 주겠어? 내가 다 산 거지!”라고 말하자,


“왜 이렇게 많이 샀니?”


“용도가 다 달라요. 그때그때 사용도 다르고. 엄마! 암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아요? 모든 병이 다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암이 가장 똑똑한 병이에요. 똑똑한 암을 이기려면 계속 생가하고 연구해야 해요.


그리고 싫어하는 걸 골라서 해주어야 해요. 특히 암은 내성이 정말 빨리 생기기 때문에, 어떤 치료든 오래 하려고 들면 안 돼요. 항상 내 몸의 이상 반응을 확인하면서, 그때그때 대처를 잘해야 해요.


엄마! 지난 1년간 4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안 해 본 게 없어. 이 병원에 마루타였잖아. 처음엔 비싼 물과 봉침으로. 다음엔 아미그달린. 그 다음엔 뜸과 태반 백신으로. 이번 8월 말엔 지금 엄마가 드시는 신기한 수소수기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마다, 오늘을 견디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틴 거야. 만약 그때마다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면, 통증 속에서 악을 쓰며 미친년처럼 소리치다 인간의 밑바닥까지 추한 모든 모습을 보이다 죽을 수 있기에 못 할 게 없었어.


엄만 아직 이런 경험을 못 해봤기에 나를 이해할 수 없어. 엄만 항상 내가 멀쩡할 때만 보았기에 믿기지 않지요?”라고 말하자, 엄마는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도 나에게 놀란다. 이렇게 독한 사람이었나 싶을 만큼.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다는 그것에 감사한다. 나의 인내와 노력, 끈기, 살겠다는 집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눈을 뜨면 어제 같은 오늘을 기대하고, 오늘 같은 내일을 바라보며, 암이 싫어하는 찜질과 많은 의료기구, 약물을 투여하면서 오늘 하루도 견딘다. 언젠간 암이 나에게 “독한 년”이라고 욕하며 떠날 날을 기다리며.

202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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