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편하면서도 어려운 관계
격리 생활에 길어지다 보니 아이들끼리 투닥거리는 일이 잦다. 하필 베트남 정부의 봉쇄 정책이 시작되는 시점에 작은 아이 핸드폰이 고장나는 바람에 작은 아이가 자꾸 형 핸드폰을 쓰려고 해서 일어나는 말썽들이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이런 시간에 책도 좀 읽고 공부나 하면서 지내면 좋으련만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 없이는 못 사는 아이들이라 서로 내 핸드폰 쓰지 마라, 잠깐만 빌려줘라, 내 폰에 네 게임 깔지 마라, 한 개만 다운받게 해주라 하면서 투닥거린다. 평소에는 비교적 사이좋은 형제라고 칭찬을 듣는 편인 아이들이라도 좁은 공간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고, 다른 외부 활동을 못하는 처지다 보니 전보다 더 자주 부딪히게 되는 것 같다. 뉴스를 보니 비단 우리집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혼율이 올라갔다는 소식도 있고,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등 집 안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사실 사람한테는 적당한 신체 활동과 야외 활동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요즘, 답답한 마음을 매일 집에서 부딪히는 가장 편한 가족들에게 풀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도 평소에 하던 스포츠 활동도 중단되고, 악기 레슨도 중단되고, 친구들도 못 만나면서 심심하고 지루하고 답답한 감정들이 쌓이고 있다. 작은 아이는 그나마 형하고라도 연결되고 싶어서 자꾸 형 방을 기웃거리고 큰 아이는 동생보다는 친구들하고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놀고 싶어서 동생을 귀찮아 한다. 자기가 안 놀아줄 거면 동생한테 핸드폰이라도 빌려주지,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틀어 놓고도 핸드폰으로 대화하고 그러기 때문에 동생한테 폰을 빌려줄 여유는 없는가 보다.
하지만 위기는 항상 기회와 함께 있다는 말이 참 맞다. 감정코칭에서도 아이들이 강한 감정을 보일 때가 감정에 대해 알려줄 가장 좋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평소에 등한시해왔던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나의 감정과 가족들의 감정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좋은 시간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우리는 괴로울 때 내 감정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하게 되고 서로 갈등할 때 서로에 대해 가장 많이 알게 된다. ‘감정의 발견’이라는 책을 쓴 예일대 감성센터 소장 마크 브래킷은 어느 인터뷰 영상에서 코로나가 시작되고 부쩍 평소에 ‘감정’에 관심이 없던 남자들 즉, 아빠들로부터 ‘감정’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기 시작한다고 그런다. 그 이유는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아빠들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안 하던 집안일도 거들게 되니 전보다 ‘감정적인’ 상황들을 많이 겪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요즘 서로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고 서로 갈등할 때 어떤 전략을 쓰는 게 유리할지, 어떻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 상대는 어떤 기분이길래 저렇게 행동하는 것인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내가 화가 날 때 바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대화해보면 어떨까 제안하면 화나서 잘 안된다는 얘기도 나오고 해봤는데 대화하다 보면 다시 화가 나기 때문에 아무 소용없다는 얘기도 한다. 그래도 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서로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또, 말로는 소용없다고 하면서도 심호흡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내 감정을 훨씬 잘 전달할 수 있고 상대의 마음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조금씩 배워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상대를 비난하기 보다 그냥 내 감정을 표현하면 된다는 내용도 가르쳐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아까 형이 나한테 소리 질렀잖아.'라고 말하는 건 상대를 비난하는 표현이니까 그보다 '나는 지금 화가 나. 좀 작게 말해줘'라고 표현하는 편이 더 좋다는 등이다. 같은 말 같지만 전자는 상대한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내 마음이 어떻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느낌이다.
물론 서로 예민해 있을 때 짜증내면서 말하면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화는 대사 그 자체만이 아니라 목소리 높낮이, 강약, 어조 등 다양한 요소들이 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해봤지만 소용없었다는 항의도 많이 한다. 결국은 그 모든 게 상대방 탓이 아니라 내 감정 조절에 관련된 문제라는 걸 언제쯤 납득하려나 지치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서로 내 마음을 전달해보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해보려는 시도 자체가 서로에게 좋은 연습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가족이란 서로에게 가장 편한 상대이면서 가장 어려운 상대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해 함께하는시간이 부쩍 많은 이런 때,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고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보드게임이나 영화보기 등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즐거운 활동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집은 서로 취향이 다르다 보니 모두가 동의하는 보드게임이나 영화를 고르는 데 자주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몇 번 시도해보다가 최근 셋 다 합의한 즐거운 활동으로 닌텐도 게임에 있는 <저스트 댄스>라는 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 화면에 나오는 동작을 따라 춤을 추면 동작이 일치하는 만큼 점수가 매겨지는 게임인데 승패랑 상관없이 아이들하고 평소라면 절대로 따라하지 않을 춤을 같이 추는 동안 웃는 일이 많아 정말 즐겁다. 요즘처럼 활동량이 부족하고 운동을 따로 하기 힘든 때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웃으면서 움직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도 든다. 모두 힘든 시기이지만 억지로라도 웃을 일을 만들어 가며 함께 최선을 다해 행복하면 좋겠다. 그렇게 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해 가장 행복한 코로나 방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