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바라보면 공감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변화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백신을 맞으면서 이 혼란이 조금 지나가는 느낌도 있는데 백신을 맞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로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백신을 꼭 맞아야 한다고 서두르며 돈을 주고서라도 백신을 맞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백신을 절대 맞으면 안 된다며 백신을 강요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각자 자기와 다른 선택을 하는 상대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면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주변에 다양한 선택과 행동들을 보며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선택과 행동에도 그 밑바닥에 흐르는 감정은 똑같을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백신을 꼭 맞아야 한다는 사람도 그 밑마음에는 불안이 있다. 백신을 안 맞으면 코로나에 걸릴까 봐, 그래서 자신도 아프고 주변에 피해를 주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다. 백신을 절대로 맞으면 안 된다는 사람도 밑마음에는 불안이 있다. 급하게 만들어진 백신의 효과를 다 믿을 수 없고 부작용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둘 다 상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면 비록 행동은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을지라도 약간은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에는 당연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자기가 정해 놓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 옳다고 믿으면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커지는 것 같다.
비슷한 경우가 또 있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일의 시작을 자꾸 뒤로 미룬다. 너무나 잘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면 일이 완벽하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일을 착수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일의 순서나 진행 등을 계속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일이 이렇게 잘못될 경우에는 이렇게 대처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저렇게 대처하고,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서 누구보다 꼼꼼히 일의 진행상황을 체크하느라 정작 진짜 일의 시작을 미룬다. 완벽한 시작과 완벽한 진행과 완벽한 결과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백 번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에 모든 게 다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것도 결국은 불안이 원인인 것 같다.
그런데 똑같은 완벽주의 때문에 일을 너무 조급하게 처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완벽하기 위해서는 빨리 시작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여러 번 해 봐야 한다고 욕심을 낸다. 그래서 미리 챙겨야 할 일들을 체크하기 전에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본다. 일감을 손에 들고 하지는 않으면서 생각만 하고 있는 그 상태를 더 못 견디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귀찮고 대강대강 빨리 일을 끝내 놓고 그 일에서 놓여 나고 싶은 심정이 큰 것이다. 사실 이런 사람도 밑마음에는 불안해서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만사 귀찮아지면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으로 일을 급하게 처리해 버리는 면이 있다.
결국 두 가지 경우 모두 불안, 부담감, 귀찮음, 압박감 등 비슷한 마음인데 행동은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마음을 보는 눈이 있다면 아무리 서로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끼리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을 조급하게 처리하는 편이다. 일을 손에 들고 있느니 빨리 해치우고 편안해지고 싶어 한다. 아마도 경험을 통해 일을 미루기보다는 빨리 끝냈을 때 해방감을 더 기분 좋게 기억하고 있어서 그러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아이들은 일을 미루는 편이다. 특히 작은 애가 정말 심하다. 일단 미루고 본다.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막에 짜증을 내면서 한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아이가 눈에 띄게 초조해지는 것을 보면 미루고 있는 자기 자신도 그렇게 마음 편한 것 같지는 않다. 나 같으면 저렇게 초조해하면서 미루고 있느니 빨리 시작해서 빨리 끝나면 그만큼 편안 해질 텐데 하는 답답한 마음에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아이 마음을 보면 잘하고 싶은 마음, 빨리 해방되고 싶은 마음은 나와 비슷한 것 같다. 빨리 해방되고 싶으면 빨리 시작하면 되지 하는 선택은 내 스타일일 뿐이다. 같은 마음이지만 성격에 따라, 또 경험에 따라 행동은 완전히 반대로 할 수도 있다는 게 내가 관찰한 결과이다. 행동만 보고 너는 진짜 게으르구나 하고 예단하거나 왜 엄마처럼 현명하지 못하느냐고 비난한다면 정말 관계가 크게 망가질 것이다.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보고도 아 저런 행동 밑마음에는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하거나 혹은 거의 똑같은 마음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까스로 하면서 아이와 큰 갈등 없이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다.
마음을 보려면 심리적 여유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나는 너무 시간이 없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줄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물리적 시간도 심리적 여유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멈춰서 한 호흡 들이키면서 내 심리적 여유를 확보하면 짧게나마 아이의 마음을 느끼고 나의 마음을 느낄 물리적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짧더라도 그런 순간이 없이 아이의 행동만 보고 바로 반사적으로 나의 행동을 하면 꼭 나중에 후회할만한 말이나 행동을 한다. 그래서 시간이 없을 때는 감정코칭하지 말라는 원칙이 있다. 그때는 감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감정코칭을 한다고 해도 진정성 없는 가짜 감정코칭이 되기 때문이다.
감정코칭은 심리적 여유가 정말 필요하다. 내가 조급하게 빨리 결론을 내리고 상황을 본다면 상대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주려고 노력하면서 내 마음을 동시에 보지 않으면 감정코칭이 되지 않는다. ‘아, 내가 조급하구나. 내가 이런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구나.’ 하는 내 마음을 동시에 알아차리면서 잘 조절하지 않으면 편안하게 아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가 없다.
이번에 백신 문제로 서로 불안해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모두 여유를 잃어가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상황이 너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유를 가지고 바라본다면 우리가 모두 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이 시간을 잘 이겨내 멋진 모습으로 예전의 일상을 찾고 싶어 한다.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볼 줄 아는 능력만큼은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와 다른 행동도 좀 더 이해를 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갖게 될테니 말이다. 또 그래야 지금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긴장감을 좀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하는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에도 다 필요한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