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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Sep 27. 2024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학교 가기 싫은 날

감정코칭을 배우고 아이의 감정은 온전히 수용해주되 행동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부드럽지만 카리스마있게 알려줘서 아이가 스스로 올바른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명제에 크게 공감했지만 실제 현실에서 내 아이들에게 감정코칭을 적용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선 아이들의 감정을 수용해주고 공감해주라는데 아이의 감정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솔직히 내 감정도 잘 모르겠다 싶은 순간이 많은데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라니 정말 어렵다는 생각만 든다. 


‖감정과 생각, 그리고 마음


우선 감정이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았다. 감정은 마음인가? 우리는 감정과 마음을 혼용해서 쓰곤 한다. 조벽 교수님이 쓰신 <성장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에는 감정과 마음을 구분해서 설명해 놓았다. 조벽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마음'은 '감정과 생각이 연결된 상태'라고 한다. 감정은 심장으로 느끼는 것이고 생각은 뇌로 따지는 것이라고 구분을 해 보면 '마음'은 ‘심장과 뇌가 연결된 상태’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접할 때 생각과 감정이 동시에 일어난다. 사물을 보든, 사건을 접하든, 사람을 만나든 순식간에 떠오르는 어떤 느낌 혹은 감정이 있는데 그 감정과 동시에 과거에 내가 겪었던 관련된 기억이나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 같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렇게 감정과 생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를 ‘마음’이라고 용어정리를 하고 보니 생각, 감정, 마음 이런 모호한 개념들이 보다 명료해진다. 감정은 마음과 똑같다기 보다 마음 중에 느끼는 영역에 해당되고 생각은 마음 중에 따지는 영역이 되겠구나 하면서 이해가 된다.


‖나의 감정, 상대의 감정


감정에는 나의 감정과 상대방의 감정이 있다. 나의 감정을 잘 알아차려야 상대의 감정도 잘 유추해낼 수가 있다. 그래서 감정코칭을 잘 하려면 나의 감정을 잘 느껴야 한다. 내 감정을 잘 느낀다는 게 쉬운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감정에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있다는 판단을 하면서 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은 억누르거나 모른척 하기가 쉽다. 아무래도 화, 짜증, 불쾌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토라지고 화내고 소리지르는 것과 같은 문제 행동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부정적인 행동을 만들어 내는 부정적인 감정은 감정 자체가 나쁘다는 선입관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 감정이란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게 참 어렵다. 아무리 그렇구나 생각해도 막상 아이가 화내거나 토라지거나 짜증을 내면 나도 아이에게 휘말려 같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말기 때문에 자꾸만 부정적인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쁘다는 판단을 자동으로 하게 된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자책하는 마음은 좀 덜어진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수용적이 되고 나면 아이에게도 많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야 모든 순간에 완전히 평온한 상태에서 완벽하게 바람직한 판단을 잘 해내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적당한 평온함을 찾은 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의 선택을 하고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학교가기 싫은 날


정말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게 아니구나 하고 크게 느낀 적이 있다. 작은 아이가 매일 아침마다 학교가기 싫다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바쁜 아침 시간에 아침밥도 안 먹고 10~20분 동안 학교가기 싫다며 다 엄마 때문이라고 징징거린다. 

아니, 너 학교 가기 싫은 게 왜 엄마 때문이야?

                   

어이없는 생트집이 아닐 수 없다. 매일 아침 나름대로 감정코칭을 해줬다. 감정코칭에서 배운대로 경청. '아, 우리 아들, 학교 가기가 싫구나.' 그럼 더 짜증을 낸다. 중학생인데 애한테 하듯이 '~~구나.' 하는 이런 말투 싫은 것 같다. 그래도 꿋꿋이 '학교 가기 싫구나!' 해줬다. 그리고 나서 열린 질문. '무엇 때문에 학교 가기가 싫으니? 어떻게 되면 좋겠니? 엄마가 뭘 도와줄까? 언제부터 그렇게 학교 가기가 싫었니?' 학교 다니는 건 원래부터 싫었고 이유를 말하기 귀찮을만큼 그냥 학교 가기가 마냥 싫고 이 모든 것은 다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대화를 매일 반복해서 했다.


어떤 날은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얼른 챙기고 잘 다녀와. 좋은 하루 되렴. 화이팅, 우리 아들' 이렇게 결론이 나고 또 다른 날은 '그럼 어쩌면 좋겠니? 선생님한테 전화드려? 학교가기 싫어서 도저히 등교를 못하겠다고 말씀드릴까? 그건 안된다고? 그럼 어떻게 할거야? 뭐? 학교를 폭파시키라고? 그건 엄마가 못해. 미안해. 엄마가 너무 무능하구나. 그래, 그래. 너네 엄마 정말 문제 많다. 잘못했어. 그래. 반성하고 있을게. 잘 다녀와. 무능한 엄마 만나 고생이 많구나. 우리 아들 '이렇게 결론이 난다. 또 어떤 날은 '가지마. 안 가는 게 좋겠어. 이렇게 가기 싫은데 억지로 학교 다니면 스트레스로 병걸려. 아픈 것보다 공부 좀 안하는 게 낫지. 갑자기 가겠다고? 가지 말라는데 왜 또 가겠다는거야. 아니야. 가지 말래두. 간다고? 알겠어. 다녀와.' 이렇게 결론이 난다. 


어느 날은 달래고, 어느 날은 설득하고, 어느 날은 혼나고, 어느 날은 혼내면서 매일 실갱이하며 학교를 보내다가 하루는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 생각에 학교를 놀러 다니면 어때? 공부하러 학교에 가니까 학교 가기가 싫지. 그냥 가볍게 생각해. 형 좀 봐. 학교를 놀러 가니까 기분 좋게 학교를 가잖니. 엄마 그만 볶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간다 생각하고 학교에 가 봐."


"그럴 수 없어. 엄마, 나는 학원을 안 다니니까 한번 들을 때 잘 들어야 된단 말이야. 그래서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는다고. 그래서 학교 가기가 싫은거야. 그러니까 내가 학교를 폭파시켜 달라고 그랬잖아. 엄마 때문에 이렇게 된거잖아. 엄마가 나를 낳을거면 학교 같은거 없이 놀기만 하고 살 수 있게 해줬어야지.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 미워!"


이 때 처음 알았다. 학교가기 싫다면서 짜증내고 투정부리고 엄마 달달 볶는 작은 아들이 학교를 놀러 다니는 큰 아들보다 훨씬 착한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이유는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수월하지가 않아서 그래서 자기를 천재로 낳아주지 못한 엄마도 밉고 학교도 싫고 모든 게 다 밉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거다. 생각없이 마냥 긍정적인 감정으로 학교에 가는 큰 아들이 오히려 걱정이었지 작은 아들은 성실한 모범생이었다. 훌륭한 학생이었다!!


나쁜 감정은 없다는 말이 맞았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쁜 게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 덕분에 우리는 걱정 근심하면서 미래를 대비하기도 하고 성실하게 노력하고 애쓰면서 어떤 일을 성취하기도 하고 짜증내고 화내면서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이가 짜증내는 걸 무조건 짜증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열심히 감정코칭 해주길 잘했다. 매일 이렇게 감정코칭 해주다 보니 이렇게 아이의 진심을 알게 되는 날도 만나게 된 거다. 아이의 진심을 보게 되니까 아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냥 곱게 학교 좀 다니지, 남들도 다 다니는 학교를 뭘 이렇게 엄마를 달달 볶고 선심써주듯이 겨우 학교를 다녀주고 그러는건지. 에휴, 고마운 줄도 모르고. 학교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면서 불평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나야말로 매일 학교가서 집중해서 수업들으며 공부 열심히 해주는 아들 고마운 줄을 모르고 있었구나....


고마워! 우리 아들!
사랑해❤


나쁜 감정은 없다.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지만 배우는게 참 많다. 씩씩하게 잘 살아주는 긍정적인 큰 아들도 고맙고 투덜대고 어리광 부리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는 작은 아들도 고맙다. 엄마 옆에 있어줘서 넘 고마워~~ 사랑하는 내 새끼들. 오늘 하루도 울고 웃으며 잘 보내보자구나.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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