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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Oct 07. 2024

당위적 삶과 실존적 삶

'해야만 한다'의 삶에서 '하고 싶다'의 삶으로

아이를 행동코칭하지 말고 감정코칭하라는 말은 아이에게 당위적 삶을 살게 하지 말고 실존적 삶을 살게 하라는 말과 같다. 당위적인 삶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당위에 갇혀서 자기가 진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삶이다. 어느정도 당위적인 삶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실존적인 삶을 잃어버리게 된다. 실존적인 삶 보다 생생하고 살아있는 삶이다. 내가 지금 여기 느끼고 있는 감정에 충실하면서 나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선택하면서 살면 실존적으로 사는 것이다. 실존적으로 살아야만 성공도 실패도 자기의 삶이 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행동코칭 vs 감정코칭


행동코칭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상과 벌을 통해 아이를 훈육하는 방식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을 가지고 평가하기 때문에 행동코칭으로 아이를 키우면 아이 역시 자기 마음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남이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행동이나 야단맞지 않는 행동을 고려하며 조심스럽게 살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전할지는 몰라도 스스로 자기 마음에 대해 잘 모르며 살게 되기 때문에 마음이 자꾸 방황을 하게 되고 자기 마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존감도 낮아진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르는 채로 다른 사람의 평가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성취를 했다 하더라도 불행하다.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양육법이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아 소중함을 놓치기 쉽지만 사실은 행동을 만들어 내는 원천이기 때문에 감정이 행동보다 더 소중하다. 아이의 감정을 포착해서 그 마음을 살펴주고 공감해주면 아이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차분하게 생각하면 정말 자기 자신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 살필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아이로 하여금 보다 지혜로운 행동을 스스로 하도록 이끄는 것이 감정코칭이다. 


똑같이 바람직한 행동을 하더라도 남의 평가에 좌우되어서 억지로 좋은 행동을 하는 것은 알맹이 없는 당위적인 삶이지만 바람직한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면 결과가 남이 보기에 대단하지 않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가상하게 느껴지고 자랑스럽고 당당한 기분이 든다. 그런 마음이 아이를 실존적으로 살게 만들어준다.

 

‖실존적인 삶을 지지해주기


아이가 바람직한 행동을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바람직한 행동이 시간 맞춰 잠자리에 드는 것, 자기 전에 양치하는 것, 음식 골고루 먹는 것 정도였는데 이것도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까 이런 일들은 어느새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된다. 문제는 공부다. 아이들이 크니까 이제 바람직한 행동이 다른 게 아니고 공부가 되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면 참 좋겠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여지없이 시험 기간은 되었고 아이는 시험보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는데도 마냥 편안해만 보인다. 나는 중학생 때 적어도 시험 1~2주 전부터 과목별로 계획도 짜고 공부가 잘 되진 않았어도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시늉은 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데 우리 애는 어쩌면 저렇게 태평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래도 아이의 감정은 소중한 거고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너는 어떻게 시험이 코 앞인데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느냐' 하면서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감정코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감정을 꾸짖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씩 ‘다음 주에 시험보지 않아?’ 하면서 물어보긴 해도 바람직한 행동을 내가 먼저 강요하지는 않도록 조심했다. 속은 바짝 바짝 타들어가도 아이가 전혀 조급해하지 않는데 내가 먼저 조급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건 배워서도 알고 겪어서도 안다.


시험이 내일 모레로 다가오니까 드디어 아이 얼굴에 그늘이 졌다.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나와 앉아 있지도 못하고 거실을 서성거리고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이 엄청 불안해 보였다.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영상을 이것 저것 돌려보는데 딱히 영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이의 감정을 포착해서 ‘너 뭔지 모르게 많이 괴로워 보인다’고 말해줬더니 자기 엄청 불행하단다. ‘무엇 때문에 불행한데?’하고 물어봤더니 ‘공부하기가 싫어서’란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부를 안 하면서도 그렇게 괴로워하지도 않았는데 그나마 철이 좀 들었나 보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조금이나마 한다는 게 기특하다. ‘그렇게 괴로우면 안하면 되잖아.’라고 말해줬다.


사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 말이 아니었다. ‘공부는 하기 싫어도 하는 거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공부가 아무리 하기 싫어도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말이 바로 아이를 당위적인 삶을 살게 만드는 말이다. 그런 말은 이미 해봤고, 아이가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아이 기분만 상했고 그런 얘기를 듣고 실제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걸 알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고민 끝에 나온 말이 ‘그렇게 괴로우면 공부를 안해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괴로우면 공부 안해도 괜찮아

‘공부도 자발적으로 내가 선택해서 해야 진짜 공부지 당위적으로 해야만 해서 하는 공부라면 안해도 된다, 실존적으로 네가 선택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공부를 해라.’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정말이지 엄마로서 나름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고 고백한다. 학생에게 ‘공부도 네 선택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많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불행해…” 웃음이 나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부를 안 하면 마냥 행복했던 아이였는데 그래도 1년 컸다고 공부를 안 하면 결과가 그닥 행복하지 않다는 정도는 깨달았나 보다. “그러면 조금만 해 봐. 해도 괴롭고 안 해도 괴로우면 조금만 하고 결과는 욕심 안내면 되잖아. 어차피 공부도 조금밖에 안했으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잖아. 욕심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만 한 번 해봐” 아이는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아이가 일어서면서 말한다. 


내일은 진심으로 공부할 거야.
오늘은 추진력을 갖기 위해 게임을 해야겠어.


맙소사.. 실존적인 삶을 지지해주는 게 이렇게 어렵다. 당위적 삶이 실존적 삶보다 훨씬 바람직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당위적인 명제가 된 데에는 그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아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아무리 힘들어도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결과에 상관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오면 정말 다행이고 안 온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아이가 선택한 아이의 삶이라고 바라봐 주고 싶다. 어차피 자기 마음이 닿지 않는데 억지로 책상에 앉아 있어봤자 머리에 남는 것도 없다. 학생이니까 이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마음을 내서 진심을 가지고 배워야 하는 것들을 열심히 공부해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내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는 날이 오늘은 아닌 것 같다.


‖감정의 바다에서 파도타기


감정코칭을 하는 것은 꼭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것 같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기 위해서는 용기와 믿음,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바람도 잘 불어줘야 하고 날씨도 도와줘야 한다. 모든 게 다 갖춰져도 내가 균형을 잃거나 힘조절에 실패하면 여지없이 바다에 빠진다. 물에 빠지는 것까지 서핑의 일종이라는 생각하는 긍정적인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감정코칭을 해서 아이와 내 마음이 딱 일치하고 아이가 내가 생각한 좋은 행동을 스스로 해주면 마치 바람을 타고 파도를 멋지게 가르는 것만큼 기분이 좋을 것이다. 감정코칭을 해서 아이의 마음을 확인했는데 그 마음이 내가 도저히 수용해주기 어려운 마음이라면 파도를 넘지 못하고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만 것처럼 허탈해질 것이다. 가끔은 암초에 걸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날도 있고, 바람이 좋지 않아서 바다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보드를 옆에 끼고 성난 파도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시도조차 못해보는 날도 있다.


하지만 작은 파도도 타보고 큰 파도에도 도전하면서 내 뜻대로 안되는 것까지 우리 인생의 한 조각이라는 걸 받아들이면 아이와 나 둘 다 지금 이대로 행복할 수 있다. 내일은 진심으로 공부할 추진력을 갖기 위해 오늘은 놀아야 하는 우리 아들을 응원한다. 진심으로 공부할 내일이 진짜 내일이 되기를 두 손모아 기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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