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화났어?'라고 묻는 아이에게
우리 모두는 행복해야 할 권리도 있고 의무도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행복할 권리보다는 의무가 조금 더 큰 것 같다. 엄마가 불행하면 아이 역시 불행해하기 때문에 엄마는 짜증내거나 화내거나 불평할 권리가 좀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옮기지 않고 내가 스스로 조율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은 엄마를 참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 기분이 좋으면 내가 착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엄마가 기분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엄마 기분이 나쁘면 내가 나빠서, 좋은 사람이 아니어서 엄마가 기분이 나쁜 거라고 생각을 한다. 사실 엄마의 기분이 모두 아이 탓만은 아닌데도 아이의 천진한 마음으로는 세상 모든 게 다 자기 때문인 줄 안다.
사실 엄마가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에너지가 높으면 아이가 말썽을 부리거나 실수를 해도 긍정적으로 잘 넘어갈 수 있는데 엄마 체력이 바닥이고 정서적으로도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 있는 상태라면 아이가 평소대로 한 행동에도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에너지가 높은 엄마의 아이는 비교적 더 많이 용서받고 이해받고 사랑받는 좋은 아이로서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되고 에너지가 낮은 엄마의 아이는 비교적 더 많이 야단맞고 혼나고 훈계를 듣는 나쁜 아이로서의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
여기서 양육자들이 명심해야 하는 것은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 돌보는 일은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너 때문에 힘들다는 표현이 일부는 분명 맞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는 어리고 미숙하니까 아이인거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아이는 아직 어리니 엄마 말을 잘 안 듣고, 장난도 많이 치고, 공부 안 하고, 실수도 많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 어른이 아이를 이해해 주는 게 맞지, 아이보고 어른을 이해하고 네가 잘해서 어른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못하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늘 항상 행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현재 나는 기분이 안 좋은데 아이를 위해 억지로 참고 착하고 이해심 많고 온유한 엄마 역할을 하는 건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걸 아직 어린아이한테 다 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기분이 안 좋을 때, 더군다나 아이가 내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걸 눈치챘을 때 어떻게 하면 무조건 참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스럽지 못하게 감정을 폭발하는 것도 아닌 적절하고 진솔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엄마라면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화두이다.
만약 내 아이가 영아라면 아이는 엄마 기분이 안 좋을 때 뭐가 뭔지 불안하고 불편해도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말 못 하는 갓난아기의 엄마일수록 어쩌면 내가 더 주의해서 내 감정에 대한 관리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정말 꼭 필요하다. 아이를 막 낳아 체력적으로 약해진 엄마가 정서적으로 계속 밝은 정서를 유지하면서 아이를 쉬지않고 돌봐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유아기, 아동기가 되면 이제는 아이가 점점 엄마 기분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엄마가 표정이 좋아 보이면 아이의 세상은 '맑음'이다. 아이는 편안하고 행복하다.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일 때가 문제다. 아이의 세상에 먹구름이 꼈다. 세상이 어두워지니 아이는 표현을 할 것이다. “엄마, 화났어? 엄마, 지금 기분이 안 좋아?”
아이가 불쑥 이렇게 물으면 엄마는 난처하거나 당황할지도 모른다. 감정에 대해서라면 어른보다 아이가 더 전문가이다. 아이가 ‘엄마 화났어?’라고 묻는다면 엄마가 실제 기분이 안 좋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이럴 때 ‘아니, 엄마 화 안 났는데?’라고 대답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기분 좋을 때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건 덜 부담스럽지만 기분 안 좋을 때 ‘뭐 안 좋은 일 있으세요?’라는 질문을 받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내 부정적인 감정을 들킨다는 게 어른들에게는 좀 당황스럽고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엄마가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하다. 엄마는 늘 부드럽고 따뜻하고 착하고 좋은 엄마여야만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자. 엄마도 기분 안 좋을 때가 종종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아이가 짚어내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런 질문을 하는 아이의 내면을 살펴봐 줄 여유가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어... 엄마 요즘 좀 고민되는 일이 있어서 기분이 별로 안 좋기는 해. 엄마가 기분 안 좋아 보여서 걱정돼? 지금 네 기분은 어때?" 이렇게 아이가 묻는 내 감정도 가볍고 솔직하게 내어놓으면서 어느 정도 인정을 하고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해서도 물어봐 주면 좋을 것 같다.
엄마가 먼저 자기 감정을 인정하고 편안하고 솔직하게 감정표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나서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는 마음으로 물어봐 준다면 아이도 편안하게 자기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 줄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아, 우리 아이가 이런 걸 걱정하고 있고, 이런 게 불안하구나.'하면서 아이의 내면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좋은 기회로 만들면 좋겠다. 아동기 아이가 엄마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염려한다면 엄마의 감정이 네 책임은 아니라고 명확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
엄마 요즘 좀 화나는 일이 있기는 한데
네 잘못은 아니야.
엄마가 잘 조절하고 해결해볼게.
반면 청소년 아이가 “엄마 화났어?”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떨까? 청소년 아이는 영. 유아. 아동기의 아이와 다른 특징이 있다. 청소년 아이들을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인식할 때 성인들에 비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확률이 높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청소년 아이들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서로 시비가 붙고 싸움을 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청소년기는 신체도 마음도 정신도 급성장하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이미 정신도 산만하고 마음도 복잡한 상황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뾰족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점을 염두하고 청소년 아이가 “엄마 화났어?”라고 묻는다면 그때는 엄마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돌아본 후 맞으면 맞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게. 요즘 좀 고민이 있긴 해." 하고 말해줄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니, 엄마 그다지 화난 거 없는데 너야말로 요즘 뭐 힘든 거는 없어?” 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되물어봐 주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 자꾸 뾰족해지는 자기 마음에 대해 들여다보는 계기를 갖게 될 것이다.
감정코칭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자신의 감정을 꾸며내면서까지 아이한테 좋게만 대해주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궁금해하는 엄마의 감정에 대해서 진솔하고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어른이라고 감정 자체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른이니까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감정도 많이 느껴봤고 감정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아이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에 대해서 어른도 다 느껴봤고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아이와 어른은 다르다는 걸 아이로 하여금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면 가장 좋다.
아이가 엄마에게 감정을 물어볼 때 집중해서 내 감정을 살펴보고 모범이 되도록 아이가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도록 적절하게 감정을 표현해 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가끔 부모는 아이 앞에서 내 감정을 숨기거나 꾸미고 싶은 때가 있다. 내가 가진 내 모습 중에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바로 아이가 보고 있을 때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 감정을 숨긴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도 말했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아이가 무언가 눈치를 채고 '엄마, 화났어? 지금 기분이 어때?'라고 묻는다면 멈춰서 자기 감정을 들여다본 후 아이의 연령에 맞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잘 표현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감정은 어른이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봐주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감정을 바람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아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과연 솔직했었나? 부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답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