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종종 엄마표 쿠킹을 하는데 나는 그걸 푸닥거리한다고 표현을 한다. 나 혼자 하면 쉽사리 끝날 일을 굳이 아이들 손을 빌려서 한다는 것, 잔손이 훨씬 많이 가고, 결과물의 만족도도 다소 떨어지기 마련이지만 아이들의 "엄마랑 쿠킹하고 싶다" 하는 혹은 회당 몇 만 원은 들어야 하는 "쿠킹 클래스에 가고 싶다" 하는 지청구를 끊어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푸닥거리이다.
이번 쿠킹은 간단히 레몬 마들렌으로 했다. 큰 아이가 레몬을 좋아하는데 생 레몬을 온갖 인상을 찌푸려가며 씹어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속 버릴까 봐 빈속에는 못 먹게 하지만 자기는 이렇게 신 맛이 너무 좋단다. 옆에서 신랑은 레몬의 씨를 빼주며 본인 어릴 때랑 똑같다고 나도 저랬는데, 중얼거리기에 그러게 자식은 너와 나, 단점의 집합체가 맞나 보다 응해주었다. 밥 안 먹고 반찬만 먹는 나와 똑같고, 생 레몬을 씹어먹는 아이. 별로 좋지 않은 건데 빼다 박았다.
레몬 세 개를 사서 베이킹 소다에 벅벅 문지르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세척했다. 레몬 껍질까지 활용할 예정이기에 평소보다 더 유난을 떨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전날 밤 한 약속을 확인하듯이 싱긋이 웃으며 다가온다. 그 웃음은 바로 엄마, R U Ready?
밀가루와 아몬드 가루를 반반 섞어 미리 체 쳐 둔 가루류를 꺼내고 냉장고에서 계란 세 개, 설탕통, 레몬, 올리브오일을 준비한다. 각자 하나씩 계란을 까는데 아직은 계란을 깔끔하게 깨지 못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산산조각 내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계란과 설탕을 계량하여 섞고, 가루류와 올리브오일까지 계량해서 넣은 뒤 대망의 레몬제스트를 넣을 시간. 레몬은 그 존재함으로 상큼함을 뽐낸다. 굳이 맛을 보거나 향을 맡을 필요도 없이 보기만 해도 신 맛이 입에 도는 새콤함을 느낄 수 있다. 치즈 그라인더를 가지고 와서 레몬을 갈아보라 했다. 작은 아이는 아직 손에 힘이 없어 쩔쩔매는데 큰 아이는 순식간에 레몬 과육이 보일 만큼 갈아버린다. 레몬 과육에 혀 끝을 대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 신랑이 어릴 때에 이런 표정을 지었을까?
레몬제스트를 조금 넣으니 반죽의 향이 바뀐다. 잘 섞어서 틀에 넣고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10분, 나는 정리를 하고 아이들은 손을 씻고 뒹굴며 만화책을 본다. 배가 고플 만도 한데, 그리고 큰 아이는 사실 이런 빵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제 손으로 만든 음식은 잘 먹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영어 유치부와 학원 일을 하며 아이들이 쿠킹 클래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새삼 느꼈던 터다. 정말 별 것 아닌 샌드위치 만들기에도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우리 집에 사는 두 아이들의 마음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어쩔 땐 엄마랑 쿠킹을 자주 해서 시큰둥한 듯 보여도 사실은 큰 기쁨의 시간일 것이라는 것. 제 손으로 만든 음식의 맛을 오랜 시간 기억 할 것이라는 것, 어쩌면 엄마와 함께 한 시간도 영원히 기억해 줄 거라는 것.
버터의 풍미는 따라잡지 못했지만 나름 괜찮은 맛의 올리브 오일 마들렌과 머핀이 완성되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듯, 마들렌 틀에 넣은 것은 마들렌, 머핀틀에 넣은 것은 머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