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준 디트로이트 피자 영상이 계속 아른거렸다. 퐁신하면서도 든든한 도우에 소스와 치즈 듬뿍 올라간 토핑, 치즈가 바글바글 끓어오르며 바삭하게 구워져 치즈 누룽지를 떼어먹는 그 모습. 디트로이트에 갈 수는 없으니, 집에서 흉내라도 내 봐야 아른거림이 없어지지 싶었다.
여름이라 빵 반죽은 금방 된다. 빵 반죽마다 섞는 세몰리나 밀가루를 꺼내고, 강력분을 꺼내고, 냉장고에서 잠자던 이스트를 꺼내어 반죽을 하는데 정량보다 물과 올리브 오일을 조금 더 넣어 약간 진 반죽으로 만들었다. 반죽이 질면 조금 더 부드러울 것 같았다. 쫄깃함도 좋지만 폭신한 도우도 좋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칼과 도마를 내어 주었다. 코스트코에서 사 온 1킬로짜리 몬트리잭 치즈를 숭덩숭덩 썰어 놓고 아이들에게 깍둑썰기를 시키니 곧잘 해 낸다. 손 힘이 아직 약한 둘째가 처음에 조금 힘들어했지만 금세 요령을 익히고 하얀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한 접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소스로는 지난번 먹고 남은 토마토 파스타 소스에 케첩을 조금 섞어 발랐고, 냉장고 속 재료, 오늘은 냉장고에서 너무 오래 지낸 파프리카 당첨이다. 색색으로 썰어 한 줄씩 늘어놓고 중간중간 이탈리안 살라미를 썰어서 채워 넣었다. 이탈리안 살라미도 냉장고에 오래 있었는데 이런 식품이 몸에 좋을 리는 없지만 유통기한이 길어 보관이 좋고 아이들이 짭짤한 맛을 좋아하여 가끔 피자를 구울 때 쓰느라고 항상 사 두는 재료이다. 한 번 쓰고 남은 것은 냉동 보관 하여 다음번 피자 만들 때에 쓴다. 우리 집은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피자를 만들어 먹는 편이라 소진이 쉽다.
디트로이트 피자는 사각의 알루미늄 경질팬이 있어야 하는데, 처음 굽는 것이고 얼마나 해 먹을까 싶어서 전용팬을 구매하진 않았고 오븐 사용이 가능한 스텐 사각 밧드를 꺼내어 세팅을 시작했다. 팬에 올리브 오일을 듬뿍 붓고는 아이들에게 손으로 구석구석 바르라고 하니 미끌미끌한 감촉을 느끼며 순식간에 임무 완료, 그리고는 금세 부풀어 오른 반죽을 꺼내어 펜에 늘려 펴게 하였다. 탄성이 좋아 잘 안 늘어나는 것 같지만 손가락을 피아노 치듯이 세워 콕콕 찍으니 구석까지 잘 펴진다. 그리고는 소스, 토핑, 치즈를 올리고 오븐 대기, 200도에서 15분 굽고, 치즈가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븐 틀 제일 윗 칸에 트레이를 하나 올리고는 7분 정도 더 구웠다. 도우와 토핑이 넉넉하게 올라가 혹시라고 덜 익을까 봐 오븐샤워를 조금 오래 한 편이다.
정리를 마치니 피자 완성, 사각의 틀 안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치즈의 자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얼마나 맛있을지, 맛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맛. 오랜만에 와인잔을 꺼내고 사과주스를 따라서 네 식구가 짠! 하며 아침 식사를 한다. 레스토랑처럼 멋진 차림은 아니지만, 애들은 예뻐도, 엄마아빠는 부석 하게 부은 일요일 아침이지만 기분만큼은 어느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근사한 외식 부럽지 않다.
오리지널 디트로이트 피자를 먹어보지 않아 비교는 불가하지만, 홈메이드 피자는 언제나 맛이 좋다. 다만 전용 팬이 아니라 밧드에 조금 눌어붙어 크리스피 한 맛을 충분히 맛보지 못해 아쉬웠다. 역시 요리도 장비빨인가 보다. 이렇게 저렇게 쟁여둔 장비들이 원형 피자팬, 사각 브라우니 팬, 머핀 팬, 식빵팬, 오란다팬이라고 불리는 파운드 팬 등등 정말 많아서, 장비를 더 구매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런 피자를 더 충분히 즐기려면 팬 하나쯤 더 사야 하려나?
여섯 시에 일어나서 시작한 오늘 하루, 무려 피자를 해 먹고 치웠는데 두 끼나 남았다. 아휴. 오늘은 또 뭘 먹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