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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Aug 11. 2024

내 떡볶이에서 엄마의 맛이 난다.

내 손에서 순한 맛 떡볶이가 탄생하다니

아이들이 이제 아주 약한 매운 맛을 먹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식에 한한 매운 맛이라 아직 순한 맛 시리즈의 라면들, 하나도 안 매운 빨간 떡볶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 했지만 몇 년동안 고추장 청정 구역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식단의 작은 변화조차 장족의 발전임이 느껴진다. 너구리 순한맛은 먹는데 김치는 매워서 못 먹고, 빨간 떡볶이는 호호 불며 먹으면서 빨간 제육 볶음은 매워서 못 먹는 아이들,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하는 생각에 기특하고 감사할 뿐이다. 이런 소박함이란.


나는 어릴 때 부터 음식을 잘 해먹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음식은 뭐 하나 센 맛이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떡볶이에는 매콤 달콤한 맛이 있었고 쫄면은 새콤한 맛이 강했다. 라면을 끓여도 청양고추와 대파 약간을 굳이 썰어 넣고 고운 고춧가루를 조금 풀어 넣어 국물은 칼칼하게, 면은 꼬들하게 끓였다. 엄마가 해 주는 것과는 달랐다. 엄마의 음식은 모난 구석이 없는 둥실 둥실한 순둥이 같았다면 나의 음식은 예민하고 드센 쌈닭 같았다고나 할까. 엄마가 해 준 음식은 내가 한 것 과는 다르게 맛이 좋았다. 뭐 하나 튀어나오는 맛이 없는데 계속 들어간다거나, 왜 맛있는 지 모를 만큼 단순한 재료인데도 엄지 척이 나오는 맛, 예를 들면 딱 적당한 발란스를 유지하는 맛의 오각형을 충실히 구현한 듯한 떡볶이, 매실 장아찌 하나만 들어갔지만 끊임 없이 손이 가던 이상한 김밥, 라면도 계란의 풍성함과 적당한 면의 익기가 어울어진 조합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끓여먹지 않지만 엄마가 해 주면 그 맛이 참 좋았다.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해 준다. 간장 떡볶이, 짜장 떡볶이, 크림 떡볶이, 로제 떡볶이 등 그 동안 안 해준 떡볶이는 오로지 고추장 떡볶이 인데 요즈음엔 안 맵게 고추장 떡볶이를 해 줄 수 있으니 단조롭던 식단이 조금 다채로와졌다. 코인 육수에 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어묵과 떡을 적당량 넣은 후 안 매운 고추장을 한 큰 술 풀었다. 원래는 고추장 없이 고춧가루로만 칼칼하고 깔끔한 맛을 살리는 편이지만 애들 식단은 아직 고춧가루 청정 지역이니, 할 수 없다. 올리고당을 두 바퀴 정도 두르고 맛 간장을 조금 넣고는 바글 바글 끓이는데 파가 푹 익어 양념에 졸아들 때까지 끓인다. 나는 떡볶이 양념을 잔뜩 먹은 파를 제일 좋아하는 편. 불을 끄고는 참기름을 한 바퀴 둘러 아이들은 그냥 주고, 나는 후추를 톡톡 쳐서 먹었다. 하나도 안 매운 떡볶이를 아이들은 조금 맵다고 하니 이번엔 고추장을 춘장과 조금 섞어서 매운 맛을 더 줄여 주었다. 색깔은 까맣게 먹음직 스러워 지면서 매운 맛이 줄어들고 맛도 다채로워지니 춘장을 섞은 것은 참 좋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내려주며 아이들과 떡볶이를 먹는다. 어느 하나 튀는 맛이 없는 나의 떡볶이를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 주었다. 밖에서 사 먹는 것 보다 맛있다고 (당연하지, 바깥 떡볶이는 매워서 못 먹으니) 엄지 척이다. 나는 속이 안 좋아 떡볶이를 조금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런, 먹다보니 계속 들어가고 있다. 누구 하나 센 놈 없이 균형이 잘 잡힌 양념에 쫄깃하고 말랑한 밀떡을 졸였으니 그냥 하나 간 만 볼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콕콕 찍어 먹고있는 떡복이에서 예전 엄마가 해 주던 맛이 느껴진다. 맞아, 엄마가 해 준 맛이 이랬지. 자극 없는 맛, 내가 좋아하는 매운 떡볶이도 아닌데 계속 들어가던 마성의 맛. 자극에 자극으로 치닫던 나의 입맛도 어느덧 돌고돌아 어린 시절의 그 맛으로 돌아온 것일까,


먹어보고 싶은데 주문이 망설여지는 떡볶이이다. 나의 위장은 이제 이렇게 맵게 먹었다간 바로 탈이 나게 연약해졌다.



배달앱을 켜면 언제나 상위에 있는 떡볶이 메뉴이지만 이런 착한 맛 떡볶이를 파는 곳은 거의 찾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요즘엔  맵기의 기본 값이 상당히 올라가 있는데다 원하면 더 매운 맛으로도 주문할 수 있으니 우리 집 같이 매운 것 못 먹는 아이들 있는 집, 매운 것을 좋아하지만 매운 걸 먹었다간 꼭 속 탈이 나고야 마는 사람에게는 배달 떡볶이는 그림의 떡과 마찬가지, 정말 그림의 떡볶이이다. 이런 착하고 순한 맛의 떡볶이는 이제 더이상 수요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경쟁력이 없는 것일까? 옛날에는 밖에서 파는 떡볶이들도 이 정도로 맵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맵찔이들은 떡볶이 사 먹기가 매우 힘든 환경이 되어 버렸다.


최근 몇 번 해 먹은 나의 떡볶이가 아이들에게도 반응이 좋고, 내 입맛에도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 종종 이런 레시피로 떡볶이를 해 먹게 될 것 같다. 아주 조금씩 맵기를 올려줘서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친구들하고 어디 가서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능력치를 갖춰 주고 싶다가도, 자극적이어도 너무 자극적인 바깥 음식을 먹고 다닐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속이 상하기도 하다.


여튼, 이제는 엄마의 떡볶이가 되어버린 나의 떡볶이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순한 맛 떡볶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래,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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