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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Dec 14. 2023

전두광이 툭툭 건든 자아존중감

서울의 봄 (12.12: THE DAY)

감독: 김성수

202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서울의 봄>.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628


영화 <서울의 봄>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서울의 봄>.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628

필자가 대입을 치르고 군 생활을 했던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육군사관학교는 상당한 엘리트 집단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서울대에 갈 만큼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학생들은 수능에 응시하기 전에 육사나 해사 필기시험을 한번 쳐보기도 했다. 요즘 육군사관학교의 위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육군사관학교 선후배를 한 자리에 모은 전두광은 그들의 자아존중감을 툭툭 건드린다. 서울대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사람들이 돈이 없고 빽이 없어서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는 육군사관학교에 온 것 아니냐고 말이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전두광은 자신의 계획으로 모두의 팔자를 필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서울의 봄>.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628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들은 결코 자신과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아존중감이 바닥을 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약점과 치부를 감추기 위하여 무슨 짓이든 한다. 자신의 낮은 자아존중감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지하게 애를 쓴다. 실제 능력보다 부풀려서 자기를 과시하고, 자신을 대단히 특별하고, 비범하며, 중요한 사람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숭배해 주기를 바란다. 낮은 자아존중감으로부터 비롯한 이와 같은 특징들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는 자기애성 성격 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의 주변인들은 때로 그들의 언변과 카리스마에 압도되곤 한다. 자기애성 성격 장애는 자신을 높이기 위해 대인관계에서 타인을 착취한다. 전두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자기 주변 사람들을 철저하게 부속품처럼 이용했다.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뒤엔 그저 저들의 목구멍에 콩고물이나 실컷 쑤셔 넣어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두광이 보이는 카리스마는 진정한 의미의 카리스마가 아니다. 자신의 연약한 자아존중감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표면적인 과잉 행동이자 잔혹하게 비뚤어진 표현일 뿐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서울의 봄>.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628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는 최근의 주요 영화들이 대체로 역사적 사실의 재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사실을 알려주고자 노력하는 매체는 이미 너무나도 많다. 책, 교과서, 언론이 할 수 없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이다. 과거 군사 독재의 폭력으로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좌절감 그리고 상실감을 겪었고, 그것의 부정적인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사실에 기반하되 더욱 풍부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한 작품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과감하게 그리고 더 세게 비틀고 꼬집으면서, 현실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을 느끼고 역사적 집단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자아존중감의 상승과 하락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러나 자아존중감이 낮다고 해서 모두가 전두광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작품들에선 그런 인물들이 서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면 한다. 그리고 전두광이 아닌 전두광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자들이 극을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잊힌 인물들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기를 바란다. 서사의 기승전결을 위해 악으로 대표되는 인물과 긴장 그리고 갈등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악이 반드시 극의 한가운데에 놓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현실은 그러지 못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럴 수 있다. 영화는 전두광을 단죄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hiphopstep.



참고문헌


Udo Rauchfleisch (2021). 가까운 사람이 자기애성 성격 장애일 때. (장혜경, 역). 심심. (원본 출판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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