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뇌를 한 인간은 그저 돼지의 뇌를 한 인간으로 존재하면 된다
괴물 (Monster, 怪物)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괴물>.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69329
영화 <괴물>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괴물을 보고 나서 대번 동성 간의 사랑을 떠올리며 역겨워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이 영화를 되려 가치 있게 한다. 아무 생각과 고민 없이 뱉는 악의적인 평가들과 경직된 잣대. 지레짐작과 무례한 판단. 괴물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이 영화의 리뷰의 장에서 영화 속의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나타난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괴물은 두 아이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 내내 사랑이라는 말은 언급도 되지 않는다. [좋아한다]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슨 감정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관계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간과 괴물 사이의 그 어디쯤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돼지의 뇌를 한 인간처럼. 미나토와 요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우정일수도, 사랑일 수도, 혹은 우정과 사랑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감정이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차원의 무언가일 수 있다.
영화 괴물에서는 사랑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정작 당사자인 미나토와 요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나도 그런 감정을 가끔 느낀다]는 식의 언급은 있지만, 그런 감정이 무엇인지 추측하는 것은 결국 영화 밖의 제삼자인 우리들이다. 영화 속에서도 둘의 관계를 자기 멋대로 추측하고 평가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러브-러브-]라고 놀려대는 학급의 무리들과 요리의 아버지처럼. 돼지의 뇌를 한 인간을 그저 괴물이라고 치부하며 배제해 버리는 자들 그리고 어떻게든 인간의 범주에 쑤셔 넣으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자들. 돼지의 뇌를 한 인간은 그냥 돼지의 뇌를 한 인간인 채로 있으면 된다.
아무도 돼지의 뇌를 한 인간에게는 무엇으로 존재하고 싶은지 그 의사를 직접 묻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 인간이고 싶다면 인간이 되는 것이고, 괴물이고 싶다면 괴물이 되는 것이다. 혹은 인간도 괴물도 아닌 다른 무언가로 존재해도 될 것이다. 당사자에게 묻지 않고 그것이 괴물이니 인간이니 왈가왈부 떠들어대는 것은 영화 속에서나 영화 밖에서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들이다.
hiphopstep.
힙합스텝이 쓴 영화 <괴물>의 또 다른 리뷰
https://brunch.co.kr/@hiphopste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