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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라 Jul 18. 2023

인생 처음으로, 늪에 빠지다.

1화 _ 이번에도 진흙탕인 줄만 알았지

우울증이 심해 집 밖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비 오는 날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 심지어 그날은 비가 오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타를 먹으러 갔는데,

만석이라 바깥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웨이팅을 하며 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이런저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바람도 선선히 불고, 길가의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기분이 편안해지는 듯했다.


식사를 거의 끝마칠 무렵, 나는 엄마께 용기를 내서 최근까지 느꼈던 감정들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전에도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힘든 일이 조금 정리가 되거나, 어려움이 조금 가셨을 때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나는 늘 우리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딸', '뭐든지 잘 해내는 동생'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

그 처음이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에는  길이 꽃길인 줄 알고, 폴짝- 폴짝- 신이 나서 즐겁게 걸었다고.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진흙탕에 빠져있었다고.

어떻게든 잘 버티고 버텨서 진흙탕을 빠져나왔는데,

후로는 꽃길도, 잘 포장된 길도 아니지만, 그래도 적당히 만족할 만한 길을 걷는 듯하면,

또 어느 순간 진흙탕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고.

그렇게 약 10년간, 늘 반복이었다고.


그래서 이번에도 길을 걷다 발이 푹- 빠지기에,

'아, 또 진흙탕에 빠지나 보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발을 담갔다고.

그런데 웬 걸? 이번엔 진흙탕이 아니라 ''이었다고.

손쓸 새도 없이 마구 빨려 들어가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 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힘을 내려하면 할수록 더 지치고 괴로울 뿐이라고.

나는 이 늪이란 곳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이라는 곳에 빠져본 적은 처음이라.


나도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바닥까지 가라앉아, 바닥을 찍고 그 반동의 힘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바닥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아니 이게, '바닥이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고.

그래서 뭐라도,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고 손을 뻗어보아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그저 암흑이라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심정이 이런 것이구나,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고.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가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기는 하는 것인지 조차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이 늪의 가장자리에 닿을 거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온 힘을 다해 허우적거리는 것밖에는 없다고.

언젠가 이 늪의 가장자리에 닿아 겨우 이 늪을 빠져나가게 될 그날을 그저 간절히 기도하며.


"엄마, 너무 죄송해요."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해서.

엄마를 속상하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이렇게나 내 깊은 곳을 꺼내 보여드린 것은 아마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말을 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엄마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되어 눈물을 뚝, 뚝, 흘렸다.

어릴 적부터 엄마께서는 정말 강한 분이셨는데, 이 날도 엄마는 정말 마음이 단단하시다는 것을 한 번 느꼈다.

어쩌면 엄마는, 엄마의 슬픔을 나에게 보여주실 수 없으신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더 슬퍼할까 봐.


"뭐가 죄송해?"

이렇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데? 지금은 잠시 아파서 쉬는 것뿐이잖아.

우리 딸은 잘할 거야. 잘하고 있고.

죄송할 것 하나도 없어.

엄마는 늘 우리 딸 믿어. 괜찮아.


엄마께서는 덤덤히 나를 위로해 주셨다.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는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우울증의 늪에 빠진 채로 몇 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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