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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에 사는 고상한 금자 씨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기품이란 인격이나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을 말한다. 비슷한 말로 품위란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는 뜻이다. 불현듯 저녁마다 어머니가 즐겨보시던 일일드라마 속 고상한 사모님들이 생각났다. 그녀들은 럭셔리한 옷차림에 젊은 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 사랑과 전쟁의 주 무대가 되는 부잣집의 거실, 소파가 놓인 자리의 안주인이다. 그러나 내 마음속 고상한 그녀는 따로 있다. 그녀는 비닐하우스에 산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떤 여름날이었다.



센터장님이 부르셨다. 보통은 상담받는 이들이 찾아오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현장 확인이 필요하면 찾아가는 상담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인 모양이다. 어떤 할머님 댁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입력했다. 멀지 않은 곳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황망했다. 늘 다니던 길에서 좀 더 들어왔을 뿐인데 이렇게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다니. 함께 간 동료 선생님과 차에서 내렸다. 어디선가 개들이 몰려왔다. 샌들을 신은 내 발목을 핥기 시작했다. 나는 놀란 마음에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저 멀리 노란 두건을 쓴 여자분이 보였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시느라 너무 애쓰셨어요.”

그녀를 따라갔다. 긴 흙길 끝에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처음엔 그저‘농작물을 보여주시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안에는 상추, 깻잎이 아니라 장판을 씌운 평상 그리고 책들이 있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비닐하우스 집이었다. 더 놀라운 건 책이었다. 제목을 읽어봤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이 책으로 말하자면 대학 때 교수님이 추천해 주셨던 아기 베개만 한 두께의 심오한 과학 서적이다. 다른 책들도 비슷했다.

“여기서 꽤 오래 살았는데, 이번 여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비닐하우스 지붕 한쪽이 무너졌어요. 물도 새고요. 자다가 무너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센터를 찾았네요.”

청아한 인상에 자그마한 체구, 고운 할머님이셨다. 내가 이분을 다른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면, 아마도 난 고상한 사모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어머님 책이 정말 많네요.”

“벌레도 많고 습해서 낮에 주로 서점에 있어요. 책 읽어요. 사람들 없을 때는 서점 화장실에서 간단히 머리도 감고 세수도 하고요. 요즘 사람들 냄새나면 싫어하잖아요.”

집에 대한 몇 가지 확인을 하고 우리는 센터로 복귀했다. 할머님과는 따로 상담 약속을 잡았다. 그날 밤에도 비가 많이 왔다. 낮에 본 무너진 천장이 생각났다. 싱숭생숭해진 나는 책장에서 다음 상담 때 낮에 만난 고상한 금자 씨에게 주고 싶은 책을 몇 권 골라두었다.


금자 씨와의 상담은 쉽지 않았다. 원하는 지역에 대한 조건이 확고했다. 똑똑한 분이셨다. 나는 열심히 찾아봤고 주택 신청과 새집으로의 이사를 도왔다. 다행히 깨끗한 집이었다. 크진 않았지만 금자 씨처럼 어딘가 고상함이 느껴졌다.


“선생님, 어묵탕이라도 끓여 주고 싶어요. 짐 옮겨준 선생님이랑 꼭 한번 오세요.”

사실 현장 확인 외에는 집에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우리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주방 세제를 샀다. 같이 어묵탕을 먹는데, 금자 씨가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림 그렸었어요.”

미술 전공자라고 하셨다. 그 외에는 말을 아꼈다. 말하기 어려운 사연이 많은 것 같았다. 그제야 내 마음속 퍼즐이 슬며시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상담을 할 때 의외로 처음부터 눈을 마주 보는 경우가 드물다. 즉 눈 맞춤이 잘 안 된다. 내성적이라 그런 경우도 있고 관계가 불안해서 상대방이 먼저 살짝 피하기도 한다. 처음에만 그런 사람도 있고, 끝까지 눈을 못 마주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금자 씨는 달랐다. 책을 많이 읽어서인 걸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와 눈을 맞추고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주고 잘 들어줬다. 상상컨대 난 금자 씨가 이전에는 지극히 보통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취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금자 씨가 살았던 비닐하우스는 일정한 곳에 머무르는 거처이지 사실 집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서는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은 상가·공장·여관 등으로, 주택 이외의 거처는 오피스텔, 고시원, 판잣집,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움막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통계청 주택총조사에 의하면 2022년에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원은 182만 9,932명으로 파악됐다. 작년 겨울에는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주저앉아, 경기도지사가 비닐하우스 거주민 긴급 대피령을 지시하기도 했다. 경기도에만 비닐하우스 2,700동에 5,50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숫자로만 마주하던, 사람이 사는 비닐하우스를 현실에서 직접 보고 나도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다.

사람들은 주거가 취약하다고 하면 남성, 그중에서도 아저씨나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2024년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노숙인이나 쪽방 주민 10명 중 두 명 또는 세 명은 여성이다. 이들은 약자 중 약자인 경우가 많다. 남성처럼 보이려고 삭발을 하기도 한다. 고상하고 고운 금자 씨가 홀로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어서, 나로서는 솔직히 더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비닐하우스 같은 비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좀처럼 센터에 오지 않는다. 세상 밖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집에 대한 불편을 이긴다. 그해 여름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이상기후인지 전에 없이 한밤중에 스콜처럼 무지막지 쏟아졌다. 나처럼 한번 잠들면 죽은 것처럼 푹 자는 사람도 자다가 빗소리에 놀라 깰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비가 많이 와서 내게는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비닐하우스에 사는 고상한 금자 씨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 이 글에 언급된 모든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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