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최근의 행보를 보자면 참 아픈 손가락이 아닐 수 없는,
국내 그 어느 곳보다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기운을 내뿜는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
한때는 '걸그룹 명가'로 불리며 국내 걸그룹계를 선도했던 회사이다.
'딴따라' 박진영의 동물적 감각으로 사실상 국내 대중성을 휘어잡았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언급하는 것도 입 아프겠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것에는 원더걸스(Wonder Girls)의 'Tell me', 미쓰에이(miss A)의 'Bad Girl Good Girl' 열풍 등이 있다.
원더걸스, 미쓰에이에 이어 현재는 트와이스(TWICE), 있지(ITZY), 엔믹스(NMIXX)가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사실상 현재는 3대 혹은 4대 기획사라고 부르기 애매하다는 평을 받으며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현재 JYP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트와이스가 데뷔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아마 모두가 나지막한 '제이와이퓌이~' 시그니처 사운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JYP표 아이돌이라면 모두가 달고 나왔던 꼬리표, 'JYP' 시그니처 사운드가 사라지게 된건 트와이스가 데뷔하면서부터다.
트와이스는 JYP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존재인데, 그 이유는 1) 첫 TF 체제 적용 사례, 2) '탈-박진영' 프로듀싱의 시작, 3) 매출 원탑 대박 걸그룹(신사옥 건물을 세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 4) 이례적인 롱런 걸그룹('22년 전원 재계약에 성공하며 현재 데뷔 8주년을 맞이함)이기 때문이다.
이 중 1)과 2)에 집중해보자면, 트와이스가 데뷔할 때즈음 대중들은 점점 '박진영 범벅'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타 기획사들은 "내 새끼들이 제일 잘났어"라면 JYP는 "내가 제일 잘났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다.
그만큼 타 기획사에 비해 JYP는 박진영이 대부분의 자사 아이돌 타이틀곡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고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며 '표면적으로' 박진영의 손길이 범벅된 곳으로 보여졌다.
('표면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SM, YG 등 타 기획사도 이수만, 양현석의 입김이 만만치 않게 막강하게 작용하지만, 이것이 박진영만큼 대중들에게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나의 매력이고 특징이었던 '박진영 범벅'은 시간이 지나 점점 대중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를 그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고 있었을 JYP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는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을 것이고,
이에 기존 '박진영 컨트롤타워 체제'가 아닌 '탈-박진영 체제'가 시작되었다.
JYP는 기존 직무중심적 조직구조의 비효율을 느끼고 트와이스를 시작으로 그룹별 TF화로 Agile한 조직 개편을 이루어냈다.
또한 JYP는 기존 박진영 의존적 곡 수급 기조와는 다르게 타 작곡가의 곡들을 많이 수급해오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박진영 앨범에서 손 떼!")
물론 이러한 과정이 급진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실제로 트와이스는 블랙아이드필승의 곡들로 활동하다 미니 4집 당시에는 박진영의 곡인 'SIGNAL'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중들의 싸늘한 원성을 받으며 '작곡가 박진영'의 건재함을 증명해내지는 못하였으며, 이후 있지의 'ICY', '마.피.아. In the morning'에서도 엄청난 원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JYP 항해선은 결국 '탈-박진영 체제'로 계속하여 항해하게 되었다.
이에 박진영과 외부 작곡가의 곡을 섞어서 사용한 있지를 거쳐 '박진영의 손을 타지 않은 걸그룹' 엔믹스로까지 항해는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있지는 데뷔곡 '달라달라' 이후로 대중성 측면(음원순위, 음악방송 1위 등)에서 하락세를 걷게 되었고,
엔믹스는 '걸그룹 명가 JYP 출신'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것이 무색하게 싱글 2집까지 멜론 음원순위 50~100위권, 음악방송 1위 경험 전무 등 대중성의 지표 측면에서 꽤나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엔믹스를 정말정말 응원하는 사람이기에...이 문장을 쓰는 것 자체도 굉장히 슬프다,,)
물론 아이돌 그룹의 성공을 단순히 '대중성'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중성' 말고도 찐팬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수익성' 또한 financially 직결되는 부분인만큼 주요한 지표이다.
비록 최근 걸그룹의 음반 판매량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오랜 기간 걸그룹의 파워는 인지도로부터 왔던 만큼 걸그룹을 평가할 때 '대중성'을 빼놓기는 힘들다.
(필자는 항상 보이그룹은 기획사의 '캐시카우(Cash Cow)', 걸그룹은 기획사의 '간판'이라고 말해왔다. 아마 최근까지는 아무도 이 문장을 부정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탈-박진영 체제'는 JYP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생각한 것보다 꽤나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류에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아니면 JYP의 네임밸류에 대한 믿음이 너무 컸던 것일까...
현재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점이 참 많은 기획사이다.
최근 JYP의 행보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멤버 개개인은 너무 뛰어나고 좋은데...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빨 빠진 사자에게 세상은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