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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Osaka by SUKAVIA
비까지 내리는 날이다. 우산에 우비에 캐리어를 끌고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해야 할 딱 그 시점이다. 출국 전 조사해 온 식당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맛집일수록 사람은 많고 어김없이 길게 줄을 세운다. 과연 점심시간에 제대로 된 식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특별하고 맛있는 한 끼를 위해 기다릴 뿐이다. 이럴 땐 여행자들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음식 3가지를 꼽으라면 여전히 누룽지, 김밥, 떡볶이 정도다. 누룽지는 최대한 심플하게 끓인 것을 좋아하고 김밥은 당근이 들어가지 않은, 그래서 항상 김밥집에서 빼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한다. 떡볶이는 국물이 많은 맵지 않은 스타일이다. 대충 파악할 수 있겠지만 매운 것은 잘 못 먹고 길어봤자 식사는 10분을 넘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유년 시절부터 먹는 것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이 자랐지만 마실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배가 고프긴 나도 마찬가지. 일단 비가 내리니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달린 아케이드로. 다행히 도톤보리, 신사이바시 등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위, 아래, 옆으로 빠르게 스캔해서 찾은 곳이 도토루(Doutor)다. 이미 한국에서 철수한 브랜드이지만 여전히 나에겐 많은 추억이 있는 곳. 무엇보다 길게 줄을 설 필요 없이 주문이 가능해 보였다. 도토루는 가장 친한 친구 녀석이 한국 철수를 앞둔 마지막 시점까지 명동점에서 일을 했기에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나 다름없었다. 만약 녀석과 함께 일본 도토루에 온다면, 성격 상 그 녀석은 자신의 청춘을 묻어버린 도토루 앞에서 울어버릴지 모른다.
메뉴판에 메뉴들이 너무 많아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커피는 아메리칸 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허니 카페오레 정도. 레귤러 사이즈로 300~410엔이다. 추천 음료로는 조금 더 비싼 흑설탕 밀크티와 말차 라테, 코코아 등이 있고 아이스티, 과일 주스도 주문이 가능하다. 기간한정 샌드위치와 핫도그, 토스트도 즉석 조리되어 판매된다. 세트로 하면 음료가 할인되기도 하고 각종 쿠폰에 이벤트까지 알찬 구성이 많다. 고민 끝에 두툼한 일본스타일 토스트에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해서 2층에 올라왔다.
여전히 촌스럽지만 낭만 가득한 풍경이 펼쳐진다. 비록 맛집 인증 셀카는 찍을 수 없지만 사라진 줄 알았던 조간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잠시 쉬어가는 세일즈맨, 깊은 담배 연기를 내뿜는 젊은이들까지. 다행히 흡연실이 생겨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올 일은 없다. 길고 가느다란 카운터 테이블에 한 사람씩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 너무나도 평범한 풍경에 나도 잠시 폰을 넣고 추억에 빠져본다. 뜨거운 카푸치노 한잔이 식기도 전에 토스트를 다 먹었버렸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저 마시고 나왔다. 그사이 맛집 앞에 줄도 조금 줄었지만 식사를 하기엔 무리. 그렇다. 맛집엔 사람이 많다.
우메다 역의 소용돌이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어딘가 숨 쉴 곳이 필요했다. 일본 여행은 꽤 어렵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동남아시아와는 달리, 원하는 곳으로 이동은 여러모로 피곤하다. 오랜만에 방문이라 그런지 무뎌진 감각. 비가 내려서 그런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마 정말 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이 많은 인파와 긴 줄을 피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새로 문을 열어 아직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곳이나 사람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는 곳을 찾아가는 정도다.
시대와 세대에 따라 일본을 소비하는 방법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90년 대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세대다. 슬램덩크와 치비 마루코 짱(금일 뉴스에 성우 타라코씨의 사망 소식을 들음)을 보며 자랐다. 가족 중에는 재일교포도 있다. 그런 이유로 그 시대, 그 시절의 추억을 먹고산다. 요즘 사람들은 요즘 것에 열광하면 되고 나는 나대로의 것에 열광하면 된다. 우메다 삼각지대를 벗어나 내가 향한 곳은 세리아 첼시마켓이 자리한 동네. 대로 밑으로 자리한 가게들과 한적한 골목, 횡단보도를 오가는 사람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스타벅스와 츠타야 서점의 합작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커피도 마시고 책도 보고. 2층 건물로 작지만 나름의 할당된 일을 하며 잠시 커피 한잔 하기 좋다. 그래도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여행작가다. 서점에 들러 책을 훑어보고 마음에 들면 사는 것이 나만의 루틴이자 여행의 즐거움이다. 재미난 것은 가이드북이 판형이 3가지로 출간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은 동일하고 가격도 같다. 필요한 정보를 찾기도 하고 전기 도둑이 되어 충전도 하고 커피도 한 잔 마셨다. 기계가 아닌 직접 우유를 스팀 해서 제공해 주는 것이 신선한 정도였다.
책 한 권이 끝나고 나면 책과 전혀 관련이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아쉽게도 미주나 유럽으로 떠날 일은 거의 없다. 동남아시아를 제외하면 일본이나 대만, 홍콩, 마카오 정도다. 홍콩과 마카오는 전만큼 다니지 않으니, 아무래도 일본과 대만 정도다. 요즘엔 대만에 훨씬 많이 다닌다. 일본은 코로나 이전에 방문했으니 꽤 오랜만에 다시 온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냥 여행만 하면 되는 나라에서도 자꾸만 직업병이 도진다는 것이다.
가끔 지인들과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여행 가이드 북의 미래에 대해서. 요즘처럼 빠르게 편해지는 세상, 구글 지도와 온라인상으로 정보들이 넘쳐나는 이런 시기에 과연, 종이책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전에는 암울하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의 정보가 부족했던 시절, 론리플래닛, 저스트고, 100배 즐기기, 프렌즈 등과 같은 종이 가이드 북의 존재는 엄청났다. 온라인 세상으로 빠르게 변해가면서 시들어가고 내리막 길이라고 느껴지지만. 요 며칠 여행을 하면서 든 생각은 그동안의 논리와는 반대로 이럴 때일수록 종이 책의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유인 즉, 온라인 속 정보들의 신뢰도가 무척 떨어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오사카 여행을 하면서 나는 몇 번 잘못된 혹은 가짜 정보로 골탕을 먹고 난 뒤 네이버 여행 인플루언서부터 일반 블로그 글까지 모두 신뢰할 수 없게되었다. 여행 인플루언서는 물론 여행 콘텐츠를 제공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정보들의 퀄리티와 정확도가 생각보다 낮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잘못된 정보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기에 불안하고 부정확한 정보들이 난무하게 된다. 기승전 '제휴마케팅'과 '와이파이도시락' 판매로 이어지는 이상한 여행 정보들. 반면 얼마 전 교보문고 리뷰란에, 출간된 책자의 잘못된 정보가 있으니 수정을 요청하는 글과 함께 낮은 별점이 올라왔다. 출간 직전까지 관련 업체와 연락하여 스케줄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하지만 출간이 되고 나서 몇 개월 뒤 업체는 운영을 임시 중지했다. 다음 개정까지는 아쉽게도 방법이 없다. 물론 다음 개정의 순간,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면 해당 정보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이렇듯 종이책의 한계는 분명하다. 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
온라인 여행 정보를 찾는 대신 여행자 안내 센터에서 제공하는 종이로 된 지역 안내 책자와 지도를 보며 여행을 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나는 네이버라는 함정을 피하고 대신 전문성이 높은 티스토리와 브런치의 몇몇 크리에이터들의 글을 참고했다. 아쉬운 점은 정확도와 신뢰도는 네이버 인플루언서나 블로거들보다 높지만 최신성이 떨어진다 점이다. 여행의 정보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콘텐츠는 더 이상 업데이트가 없다. 때문에 최신성이 떨어져 마치 온라인으로 된 종이책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넋두리로 마무리. 이랬거나 저랬거나 나부터 반성해야 할 판이다.
완벽할 것 같았던 오사카 여행의 마무리는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사건의 발단은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라피트 열차를 타기 위해 이른 아침 체크아웃을 하려는 순간 시작되었다. 2개의 객실 키 중 1개가 보이지 않는다. 전날 입었던 옷가지와 가방들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타나지 않는 키.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순간 온몸이 쉐이킷!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일단 로비 데스크로 이동, 어제와 같은 사건(신칸센 사고)이 아니고서야 정확하기로 유명한 일본이니, 라피트가 늦어질 일은 없을 터. 호텔 규정을 안내하는 담당자는 분실 요금 5,000엔을 아쉬운 표정을 더해 알려준다. 참고로 현금만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동남아시아 휴양지라면 객실 키 한두 개는 안중에도 없었을 텐데. 가끔은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그러하고 한다. 그러나 야박한 도심의 호텔은 객실 카드 키로도 충분히 수익을 내고 있다. 잃어버린 객실 키 하나 때문에 오사키 여행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어제의 일들을 떠올리며 잃어버렸을 장소들을 떠올려보는데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냥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달리 방도가 없다. 그러나 5,000엔이라는 금액이... 그나마 다행인 건 분실금으로 낼 현금이 남아있다는 사실. 만약 여분의 현금조차 없었더라면, 아침부터 atm을 오가며 난리부르스 각인데.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단 혹시 하는 마음에 분실영수증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혹시라도 귀국 후 천천히 짐을 정리하다가 객실 키를 찾으면 키를 챙겨 다시 오사카로 돌아올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의 메시지를 차분하고 명확하게 직원에게 전달했다. 직원은 지금 바로 짐을 확인해 보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짐을 풀고 객실 키를 찾다 보면 정해진 시간에 공항철도를 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수증을 받고 일단 난카이 난바역으로 향했다.
잃어버린 개실 키를 찾기만 한다면...
만약, 캐리어 안 짐들 사이에서 나타나기만 한다면...
분실영수증은 5,000엔짜리 당첨금을 받을 수 있는 로또 티켓으로 변신하게 된다. 로또 복권하나 생긴 셈이라 치고 희망회로를 돌리며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난카이 난바역에 도착, 간사이 국제공항까지 가는 라피트 특급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은 아주 다행히 정시에 출발, 정시에 도착했다.
P.S 집에 돌아와 짐정리를 했습니다. 과연 잃어버린 객실 키를 찾았을까요? 궁금하시다고요?
다음번 오사카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결과도 발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