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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Mar 16. 2024

봄날의 풍경(2)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


 봄날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거론할 때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을 빼놓을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일제 강점기 농촌의 어리숙한 인물이 등장한다.

 데릴사위로 들어와 삼 년 일곱 달이 되도록 일만 한 남자(<봄봄>), 마름의 딸 점순의 ‘긴치 않은 수작’ 때문에 분이 나는 열일곱 소년(<동백꽃>)이 그 주인공이다.

 

전자의 ‘나’는 점순이의 키가 자라면 성례 시켜 주겠다는 장인의 말을 믿고 기다렸으나, 계속 성례를 미루니 답답한 중이다. 

우직하게 일하다가도 골이 나면 “골김에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꼰코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짜증이 나다가도 곧 성례 시켜 준다는 꼬임에 “귀가 번쩍 띄어서” “남이 이틀 품 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는 등의 순박함이 웃음과 재미를 준다. 


사건은 그가 점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데서 비롯된다. 


구장을 찾아갔다가 별 소득 없이 돌아오자, 점순이 핀잔을 준다. “안 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 하자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한 것이다. 


‘바보’라는 말에 충격받은 ‘나’는 일하기를 거부하고 드러눕는다. 

이에 화가 난 장인이 볼기짝을 후려갈기자 점순의 말대로 장인의 수염을 잡아채고 실랑이 끝에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낚는다. 


그런데 점순이 좋아하기는커녕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며 달려든 것이다. 

“제 원 대로 했으니까” “퍽 기뻤겠지” 짐작했는데, 

“대체 이게 웬 속인 지” 영문을 몰라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동백꽃>은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로 시작함으로써, 점순이 소년의 수탉을 반복적으로 괴롭히고 있음을 알려준다. 


문제는 ‘나’가 점순의 속마음을 모르고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라고 여기는 데 있다. 

점순의 도발은 강해질 수밖에 없고, 급기야 ‘나’가 점순네 닭을 때려 죽게 만든다. 


울음이 터진 ‘나’에게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안심시키며 점순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쓰러진다. 

그 바람에 둘은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그동안의 대립이 무화되는 이 장면은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는 묘사로 봄날의 향기와 어우러져 막 깨어나는 관능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봄봄>에서도 봄날은 후각과 청각, 촉각을 총동원해 본능을 일깨우는 건강한 생명력을 드러내면서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다가온다.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이러한 봄의 정취는 어수룩한 인물이 야기하는 웃음과 더불어 궁핍한 농촌의 현실을 눙쳐놓는다. 


곧 동리 사람들이 ‘봉필’이란 이름을 ‘욕필이’라 손가락질할 정도로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은 장인의 횡포(<봄봄>), 

“내가 점순이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점순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땅도 떨어지고 집도 내쫓기”게 된다는 ‘나’의 말에서 알 수 있는 마름의 위세(<동백꽃>), 

욕을 먹어도 “굽실굽실” 살아가는 소작인의 삶이 봄날의 풍경과 해학적 정황으로 인해 그 정도가 희석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봄은 암담한 나날을 견디고 새로 단장한 희망의 얼굴을 하고 젊은이의 자신감과 생명력을 안고서 우리 곁에 온다. 

고달픈 삶에도 봄은 오므로, 봄 햇살 한 줌에서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감사한 일이리라. 



* 격월간지 <그린에세이> 2024 3,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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