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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30. 2023

군부독재를 이야기하는 <밀수>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 <밀수> 네이버 포토 스틸 컷 / 해녀들이 약하고 작은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는 부감
밀수[Smugglers](2023)


이야기가 군더더기가 없어 자칫 쓸 말이 없을 뻔한 호쾌한 결말로 마무리하는 이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감상 하나를 적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도 없으며,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 '보였던' 부분을 풀었다는 것은 알린다.


군천은 어디인가?

어느 주말, 바글거리는 관객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봐야 할 것 같은 '흥행보증수표' 류승완 감독님의 영화 <밀수>를 보러 갔다. 대중적이고 실제로 항상 많은 관객수를 동원하기도 하며, 또 그의 필모그래피가 말해주듯 여러 정치적 논지거리를 줄 수 있는 영화겠다 추측했다. 나는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도록 염두하며 겸허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따라갔다.


어두운 극장 안을 밝히는 리더필름이 지나가고 '군천수산물공판장'이 보인다. 푸른 바다 위의  '1970년대 중반'이라는 노란 손글씨의 자막을 보고선 '70년대? 독재정권 시기 이야기구나'라며 혼자 되뇌며 이어서 '군천? 그런 곳이 있었나' 의아했다. 


출처: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내 본적(本籍)은 충남 서해안 부근이기 때문에 그쪽 지명이라면 내가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측을 한 번 해보았다. 자연스럽게 '군'으로 시작하는 행정구역은 가장 먼저 전라북도의 '군산'을 떠오르게 한다. '천'은 군산과 맞닿아 있는 '서천'이라고 끼워보면 퍼즐이 얼추 맞아 보인다. 혹은 시선을 더 넓혀 해안선을 아우르는 웅천, 대천, 광천까지 더 올라가 볼 수 있겠다.


작중에서 불법밀수가 이루어지고 있는 '군천'이라는 지명은, 영화의 배경지를 전라도로 명실히 설정할 경우 정치적 논란이 불가피하기에, 비교적 중립적 위치의 충청도와 결합시킨 최소한의 안정장치일 것으로 보인다.


영화 <밀수> 네이버 포토 스틸 컷 / 권력에 굴복하듯 그를 올려다보는 카메라


부패한 공직자 '이계장'은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은유이다.

세관공무원 '이장촌'(김종수)은 밀수꾼들을 부지런히 단속하며 청렴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정의로운 공직자로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가며 밝혀지듯이, 사실 부정부패한 짓을 벌이는 뒤가 구린 존재로 묘사한다. 


제복을 입은 '이계장'이 박정희 초상화 아래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관객의 눈이 책상 위에 놓인 서울우유병을 찾아내고는, 박정희 정부가 '이계장'의 모습으로 둔갑했다는 추측은 과연 무리한 억측일까?


'이계장'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 우유를 마시며 총살을 지시하는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발츠)처럼 피도 눈물도 없다. '이계장'은 "군대 다녀오셨나? 총 구녕 거꾸로 드는 게 제일 무서운 거야"라는 권상사(조인성)의 대사 말마따나, 자기 부하직원도 배 위에서 교살하라 지시를 내리는 잔혹함이 보인다. 넘어서 대사는 군인들을 시켜 시민들에게 총구녕을 돌렸던 박정희 정부를 비판하는 촌철살인을 의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영화 <밀수> 네이버 포토 스틸 컷 / 대등한 관계인 듯 수평으로 보여준다. 왼쪽부터 춘차, 고마담, 진숙


기회이자 탄압의 대상이었던 정부

이렇게 권선징악의 플롯을 표방하는 영화 <밀수>는 케이퍼 무비이면서 액션활극을 진하게 보여주기도 하는 한편, 동시에 버디무비이기도 하다. 세관에 잡혀 옥살이를 하는 '진숙'(염정아)의 탄압과 상경하여 '권상사'와 새로운 기회를 잡은 '춘차'(김혜수)의 엇갈린 선택은 그 대상이 모두 공권력인 것을 알 수 있다.


체면과 자존심은 죄다 갖다 버리고 다방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고마담'(고민시)까지 포함해서, 이 셋 모두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영화는 책임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1994)이 생각나는 '권사장'의 돈가방 속 다이아몬드가 그저 별 의미 없는 맥거핀이었던 것처럼 그들이 성공적인 작전을 치루어 보상을 받는 것만이 영화의 목적은 아니다. 


선민이라는 존재에 대해 혼자 변증을 해보지만, '진숙'이 교도소에서 만든 가발을 '춘자'가 쓰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밀수>는 정부의 수혜를 겪은, 억울하게 군사독재에 재단당한 혹은 그 아래에서 상처받으며 살아간 이름없는 시민들의 손을 끌어와 맞잡게 하는 모습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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