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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웅 Jul 19. 2023

<문라이즈 킹덤> 번개가 한바탕 치면

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문라이즈 킹덤> 네이버 포토, 스틸 컷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2012)


학창시절, 따스한 봄에 지루한 수업시간에 뛰쳐나가 학교 밖으로 모험을 해보고 싶은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 이다. <문라이즈 킹덤>을 본 사람들에게, 당신은 뛰쳐나가는 문제아가 되고 싶었는지 모범생이 되고 싶었는지 소박한 질문을 건네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다.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배우들, 매끄러운 카메라의 수직과 평행 이동, 풍부한 변주곡들이 흘러나오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섬세한 손가락에 연결된 다채로운 인형들, <문라이즈 킹덤>은 아름다운 배경지들 속에서 움직이는 동화 인형극이다. 소박해 보잘 것 없어보이는 아기자기함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깊은 철학은 '진지하게' 써낸 어른들의 책 못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이다.


아늑한 집 안에 안주하며 비행기 모형을 가지고 노는 세 남동생들 사이, 현실이라는 거대한 방주속에서 저 멀리 날아갈고 싶은 까마귀 수지는 어떤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동경을 보낸다. 까마귀가 뭍을 찾듯 그런 그녀의 망원경 속에 한 소년의 모습이 포착된다. 

그 소년의 이름은 샘 셰쿠스키. 그가 속해있는 스카웃은 가장 냉담하고 현실적인 군대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상명하복의 울타리 안에서 그는 그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을 뿐인데도 <쇼생크 탈출>의 앤드류 드프레인처럼 낭만적인 탈출을 감행하길 결정한다. 


헌데 그 둘은 아는 사이가 되었을까, 1여년전 교회의 한 연극무대, 샘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 뒷편에 탈을 벗고 양치하는 모습, 분장하는 모습을 보며 잘 짜여져 있는 무대와 다른 민낯을 여실히 본다. 그저 분장하고 흉내낼 뿐인 다른 새들 사이로 날고 싶은 까마귀 수지를 봐버린 샘은 "너는 뛰쳐나가고 싶은 문제아니?" 라고 묻는 것처럼 "너는 무슨 새야?" 라고 묻는다.  샘 셰쿠스키의 말에 수지는 "나는 까마귀"라고 말한다.  샘은 그녀를 알아보았고 둘은 통했다.


숲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샘과 수지. 험한 야생에 대항할 준비가 되어있는 '노란 스카웃 옷'의 샘과 다르게 향수, 배터리전축, 음악, 책, 가위, 여행가방 등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수지는 아직 아늑한 집안의 것들을 솎아내지 못하고 있다.  

둘을 정말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을 보여주듯 물 건너 멀리서 찍는 카메라. 대장의 말처럼 스카웃은 멋대로 도망갈 권리는 없다. 그들을 찾아나서는 어른들의 자동차 안에서는 수지와 좋아하는 책 속의 동화와 다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뉴스만 나온다. 마치 어른이 하는 일은 아이를 단속하는 일인 것 처럼 경찰차를 타고선 말이다.


<타이타닉>안의 샘과 수지에게 물은 또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저 멀리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바다 앞에서 그들만의 궁전을 짓는다. 소녀는 소년보다 조금 빨리 성장하는 걸까. "사랑하지만 헛소리야" 라는 샘의 말에 "나도 사랑해"라며 받아치는 수지. 빼낼 수 없이 항상 따라다니는 귀에 꽂힌 낚시바늘 귀걸이는 샘을 향한 수지의 사랑의 징표이자 순수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기어코 그들을 찾아낸다. 샘과 수지의 궁전을 손쉽게 들춰버리는 어른의 손에 의해 저 끝없는 해변에서 물장구 치던 아이는 조그마한 욕조안에 웅크리게 되고 샘은 차갑고 냉정한 파란색을 입고있는 사회복지사에게 맡겨져 고아원에 갈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둘에게 기회가 온다. 저수지의 댐이 터지며 홍수가 나게되면서 도망칠 기회가 생긴 것 이다. 마치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모두가 대피한 세인트 잭 교회 밖은 색따위는 보이지 않는 폭풍우 치는 차가운 현실이다. 아직 어른이 되어보지 않은 아이에게 그 위험한 폭풍우 속은 그저 모험의 대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의 풍파를 막 받아내기 시작한 신혼부부처럼 샘과 수지는 그 냉혹한 곳으로 뛰어드려 한다. 그리곤 번쩍 번개가 친다.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새 샘은 무채색의 제복을 입고선 섬의 경찰이 되어 일터로 떠난다. 내내 빨간색 옷을 입고 있던 수지는 어느새 노란색 원피스를 몸에 둘렀다. 현실의 안주 속에서 그들의 <타이타닉>은 아름다운 수채화로 기록되어 남아있을 뿐 이다.


예술이 있기 때문에, 뉴팬잰스 섬에 대해 설명하는 괴상한 할아버지 처럼 우리는 빨간 옷을 입고 있지만 노란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문라이즈 킹덤>은 곧 우리내의 인생과 청춘을 이야기한다. 유리컵의 하얀 우유를 버리고 맥주를 따라도 여전히 우유는 묻어나 섞이지만, 맥주를 따를 수록 우유는 희미해지고 점차 없어질 것 이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선택에 신중해야할 것 이다. 가득한 꿈과 희망을 안은 청춘을 지나 크고 작은 풍파를 거치며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처럼 각자의 인생의 강력한 사건, 번개가 한바탕 치고나면 인생은 돌아올 수 없이 많은 것이 바뀔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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