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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Mar 01. 2024

손에 손잡고 나누는 기쁨

아내와 식탁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세대의 학창 시절 수학여행 단골 장소였던 천년의 고도 경주에 대해 아내도 나와 같은 경험과 느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함께 공감을 나누고 싶었다.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신라의 역사 여행을 통해 즐겁고 보람된 수학여행이었는데 당신도 그때 그렇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내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지금까지 경주를 가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아내도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순간 머쓱해져서 얼떨결에 경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아내와 나의 일정을 살펴서 여행 날짜를 정했다. 

아내는 경주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며 여행 가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설렘으로 무척 행복해 보였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여행을 통해 기대와 설렘 속에 삶을 재충전하고 활력 불어넣기 위해 여행을 꿈꾼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여행 속에 남겨진 추억으로 또다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즐거움이 마음을 뭉클거리기 때문이다.

      

직장의 울타리를 넘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재취업의 기쁨을 안고 새롭게 시작한 직장 생활은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어려운 변화를 겪었다.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하나하나 엉킨 매듭을 풀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차를 몰고 사무실에 거의 다 달았을 때 골목에서 작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길가에 버려진 종이 상자를 줍는 한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좁은 골목길이어서 차를 멈추고 아주머니가 손수레에 종이 상자를 다 싣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출근길을 서둘렀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 아주머니가 우리 신협 창구에서 꼬깃꼬깃한 지폐를 펴서 예금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는 생활비에 보태고자 폐품이나 재활용품을 모아서 고물상에 팔고 푼푼이 저축하고 있는 우리 신협의 조합원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그분과 함께할 수 있는 삶에 즐거움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치며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여행을 함께 떠나는 것이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하듯이 여행을 통해 나누는 즐거움은 그분에게 기쁨을 주고 나의 직장인 신협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여럿이서 하는 여행은 함께 나누는 기쁨이 더 큰 것 같다.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를 막론하고 우리 신협을 거래하는 조합원이면 누구나 여행을 함께하며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여행이란 멍석을 깔아 놓으면 주인공인 조합원들이 멍석 위에서 즐겁게 여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곧바로 여행을 기획하면서 체험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체험하고 느껴야 제대로 된 테마여행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주말 가족여행을 핑계 삼아 사전답사를 계획했다.


금요일 퇴근 후 자취방을 정리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가서 잠든 아이들을 깨워서 승합차 차 뒷좌석을 펴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잠에 빠져든 아이들 셋을 나란히 눕히고 새벽 어두움 속을 헤치며 정선 아우라지 레일바이크와 정선 오일장을 체험하러 출발했다. 

지금은 여러 곳에 레일바이크 시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레일바이크 탑승장이 전국에 몇 안 되었다. 

게다가 정선 레일바이크는 타볼 만하다는 입소문이 더해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탑승일 한 달 전에 인터넷 예매를 할 수 있지만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워서 현장 예매를 위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다.      


어둠을 뚫고 새벽 4시에 정선 레일바이크 매표소에 도착했더니 깜짝 놀랄 진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매표시간이 되려면 네다섯 시간이나 남아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져 줄을 서 있었다. 

더욱 놀란 일은 길가에 드문드문 임시로 설치한 텐트로 보아 밤샘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이불로 어깨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그 동네 숙박 펜션 주인이 레일바이크 승차권을 미리 확보하여 손님을 끌려고 용돈이 궁한 어르신들에게 아르바이트를 부탁했다고 했다.   

   

차 안에서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놔두고 늘어선 줄의 꽁지에 붙어 내 매표 차례를 가늠해 보니 다행히도 승차권을 살 수 있는 순위에 들었다. 

새벽의 춥고 어두운 밤에 몇 시간 동안을 우두커니 서 있으려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내와 번갈아 가며 심심치 않게 서 있다 보니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오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었던 아들 녀석이 잠에서 깨었는지 차에서 나와서 추위에 떨고 있던 나에게 몸 좀 녹이라고 교대하자고 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조금만 서 있으라고 하고는 얼른 차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긴 새벽을 보내고 두 대의 레일바이크 탑승권을 거머쥐었다. 

레일바이크 두 대에 나누어 탄 우리 가족은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 구간을 달리며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경치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길었던 새벽의 어두움 속에서 추위를 견디었던 것을 보상이나 받는 듯 대자연의 신선함을 만끽했다.      

레일바이크 체험에 이어 정선 오일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골 시장터답게 시끌벅적하고 음식에서부터 볼거리로 풍성했다. 

정선의 명물 콧등치기국수와 곤드레밥으로 점심을 먹고는 엿 파는 장사꾼의 엿치기 공연을 보고 시장 골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이들의 성화로 시장통 족발집에 멈췄다. 

그날 맛본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족발 맛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주말 가족여행을 핑계로 여행지를 답사하고 조합원과 함께하는 첫 번째 테마여행을 기획했다.      

이렇게 시작한 테마여행은 가을 햇밤 수확 철이면 단골 여행이 된 ‘공주 알밤 줍기와 백제문화 탐방’이란 테마처럼 체험과 관광을 겸해서 조합원들에게 날로 인기를 더해갔다. 

또한 더운 여름이 다가오면 칠순이 넘은 어르신들과 함께 한탄강이나 영월의 동강을 찾아 젊은이들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래프팅을 즐기며 어르신들은 나이를 거슬러 건강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진행한 테마여행은 해를 거듭하면서 조합원들의 기대와 설렘을 안고 기쁨을 나누다 보니 우리 신협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는 더욱 단단해져 갔다. 

그러다 보니 조합원들의 참여와 협조로 신협의 재무구조도 튼튼해지고 예금도 쑥쑥 늘어나 우량한 신협으로 성장해 나갔다.      

한편으로 여행을 통해서 조합원들과 기쁨을 나누면서 조합원들에게 삶에 보람을 줄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배려하고 돕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보람과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고민이 풀렸다. 

여행을 함께한 조합원들에게 봉사활동에 대한 의향을 물었더니 사십여 명의 조합원이 손을 들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봉사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먼저 구청의 자원봉사센터에 도움을 청해서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돕는 것’     

자원봉사의 참뜻을 교육을 통해 익히고 각자의 마음속에 새겼다. 

그리고 동네에 있는 무연고 환자 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직접 체험하고 두손모아봉사단을 창단했다. 

봉사단이 만들어지고 자원봉사 활동을 꾸준히 실천하기 위해서 발달 장애인 자활 시설인 ‘바오로교실’에서 ‘일일레스토랑’이란 나눔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바오로교실 재활센터는 장애인복지시설로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사회적응을 돕는 사회복지 시설이었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두손모아봉사단과 지적장애인들과 함께 ‘일일레스토랑’을 열어서 봉사단원들은 음식을 만들고 지적장애인 친구들이 넥타이를 매고 웨이터 옷을 입고 서빙을 했다.     

인근 지역의 비슷한 시설의 지적장애인들을 초청하고 동네 주민들이 오가며 점심을 한 끼를 나누는 ‘일일레스토랑’은 지적장애인들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배움과 어우러짐의 마당이었다. 


정기봉사 날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함께 단순한 일거리 작업을 함께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단순 일거리 작업을 통해 생긴 수입을 지적장애인 친구들에게 급여로 나누어 주면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신협 창구에 찾아와 그들의 통장에 스스로 예금을 하면서 사회적응을 위한 금융 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는 두손모아봉사단과 바오로교실 친구들이 서로 마음의 정을 나누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1박 2일 캠프를 기획했다. 


시골 학교를 빌려서 바오로교실 친구들과 함께 마음과 마음을 모아 ‘Hand in Hand’ ‘손에 손잡고’라는 주제로 나눔과 배려의 자원봉사 캠프를 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사랑 팀과 나눔 팀으로 팀을 나누어 한마음 명랑운동회를 실시하면서 달리고 넘어지고 서로 일으켜 세우면서 나눔과 배려의 즐거운 시간을 나누었다. 

어두움이 무르익는 밤이 되어서는 촛불의식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반추하며 나눔과 배려의 마음을 통해 소통의 의미를 되새기는 경건한 시간도 가졌다.      

이틀 동안 두손모아봉사단원들과 바오로교실 친구들이 정겨운 대화를 나누면서 장애와 비장애의 틈을 좁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었다. 


이렇듯 테마여행으로 즐거움을 함께한 조합원들과 봉사활동을 통해 삶의 보람과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갔다.

더 나아가 자원봉사 활동의 소중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구청의 자원봉사센터에 봉사단체로 등록했다. 

봉사단원들 개인의 봉사실적이 안전행정부의 봉사 포털시스템에 인증 관리되어 봉사단원들은 자원봉사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자긍심을 높여 나갔다. 


차츰 두손모아봉사단의 지역사회 봉사 활동이 많아지면서 봉사단을 이끌던 나에게 구청에서 자원봉사자 표창을 준다고 전해왔다. 

내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봉사단원들이 받아야 할 표창이기에 개인이 아닌 단체 표창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봉사단 활동의 짧은 이력임에도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인정받아 구청장 단체 표창을 받았다. 

자원봉사자 날에 두손모아봉사단원들은 단체 표창을 받고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보람과 자긍심이 넘쳐났다. 


내직장 신협은 돈만 예금하는 은행의 역할을 넘어 사람이 중심이 되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덧붙여서 지역주민의 생활금융으로 지역사회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어서 늘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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