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시절 컴퓨터게임 하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를 멀리 다녔던 탓에 동네친구가 없었던 나는 디스코드(Discord)라는 음성채팅 플랫폼으로 멀리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며 주말마다 밤새도록 같이 게임을 했었다. 기숙사학교였지만 주말은 본가에서 지냈는데, 주말 동안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까워 이틀밤을 게임하며 새고 학교에 간 적도 있었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밥 먹으면서도 유튜브 콘텐츠를 소비했지만 나는 내가 중독이라고 스스로 깨닫지 못했었다.
며칠 전에 카페에서 중학교 친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앞에 사람이 있는데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친구가 돌아오자 친구에게 "만약 이 세상에 핸드폰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친구는 "우리 인도 때 핸드폰 없었잖아"라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인도에 있을 때 주말에 부모님과 잠깐 30분 통화할 수 있었던 시간을 제외하면, 우린 핸드폰 없이 생활했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모든 인터넷관련한 것들을 사용할 수 없었다. 미디어 없는 생활이었다.
당시에는 누구도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핸드폰 없이 생활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인도에는 힌두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들이 있는데, 국가에서 그 많은 종교들의 기념일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해 공휴일이 정말 많았다. 나는 인도에서 공휴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할 게 정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휴일이면 기숙사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고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봤던 것 이외에는 하루종일 자유시간이었다. 휴대폰, 컴퓨터도 없었던 그때의 우리는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을 때우려고 별의별 일들을 했었다.
내가 가장 즐겨했던 건 공기놀이였다. 딱딱한 대리석 바닥에서 공깃돌을 던지고 잡았다. 처음에는 1단계도 통과 못했는데 한국에 돌아갈 때즈음엔 한번 하면 몇십 년은 기본이었다. 기타도 처음 배웠고 책도 정말 많이 읽었다. 개와 대화도 시도해 보고 쥐도 잡으러 다녀봤다. 이래도 하루가 너무 많이 남아있던 날들이 많았다. 평소에 잠자는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땐 시간을 빨리가게 하려고 억지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저녁 먹을 시간이 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철저히 미디어와 떨어져 있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지루했지만 그때만큼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평온했던 적이 없었다. 비교할 것도, 대상도 없었고 내가 뒤처지고 있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다만 하루하루를 어떻게 더 재밌게 보낼까 고민했고, 사소한 일들에서도 큰 행복을 느꼈다. 사실 이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 유튜브만 틀어도 매일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 자기의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인스타그램 피드엔 여행, 새로 구입한 물건들을 자랑하는 게시물이 넘쳐난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왠지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미디어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뺏어간 것도 많다. 나는 왜 빌게이츠가 일 년에 한 번씩 생각하는 주간을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철저히 디지털로만 사는 삶도 불가능하고, 아날로그로만 사는 삶도 불가능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삶이란 존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