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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 May 31. 2017

현지너리 김현진의 Names of Beauty


현진 씨에게 아름다움이란 뭘까, 그게 궁금해요.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문득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데요. 무렵이라 그런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라든지 공기라든지 하는 것들이 머리를 스쳐요. 선물을 주기 받기도 하잖아요. 개인적으로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날을 꼽으라면 전 생일보다도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해요. 생일 때도 선물을 받기는 하지만 크리스마스 때 더 많이 받지 않나요? (웃음)


일반적으로 말씀을 드려보자면 아름다움이라는 건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아름다움에 대해 다양한 말을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건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름다움이라면 적어도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결국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아름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럼 최근에 가장 기분 좋으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 순간을 아름답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는지도 여쭙고 싶네요.


최근이라면 역시 크리스마스니까요. 행사처럼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는데, 올해엔 제 그림들을 인쇄소에 맡겨 카드를 제작하고 그 뒤에 내용을 적고 있어요. 지금도 신나게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게 별 거 아닌 일 같지만 하고 있으면 기분 좋아지거든요. 아름답지 않나요. (웃음)


아직 인쇄물은 못 받았고, 일기장에 써둔 걸 차근차근 옮겨 적어서 전달하려고 해요. 이번 주에 남자 친구 학교가 종강인데요. 남자 친구 학과 친구들이 이젠 제 친구들이나 마찬가지라서 카드 주면서 고생했다고 마음을 좀 전하려고요. 올해는 여기저기 꽤 많이 쓸 생각이라 벌써 조금 설레기도 하네요. 암튼 최근에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바로 이거,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는 지금이에요.


어쨌든 카드를 쓴다는 게 잔손이 참 많이 가는 일이잖아요. 물론 그런 정성이 있어야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분 좋은 일이 되겠지만요. 그럼 작업 얘기를 좀 해볼까요? 작업을 하실 때나 주제를 잡으실 때에도 아름다움, 또는 기분 좋은 느낌이 현진 씨께 영향을 주는 편인가요?


그럼요.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선을 단순화시켜서 직선으로 형태를 재구성한다든지, 색을 다시 배치한다든지 하는 모든 방식은 사실 일단 그게 제가 좋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이번에 명화를 다시 그려보자고 했을 때도 그랬어요. 전 똑같이 따라 그리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거든요. 뭔가 그대로 모사하거나 실제같이 그려낸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막상 제가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신에 같은 걸 다시 그리더라도 제 시선으로 뭔가 새로운 걸 찾아서 그걸 부각하는 일은 꽤 재밌죠. 다른 작업을 할 때도 그렇고 연작을 구성할 때도 그런데 그것이 제 기분을 좋게 하는지, 그래서 제 마음이 끌리는지가 정말 중요해요. 그래야 마무리까지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상황이나 시간에 따라 제 기분을 좋게 하는 것들도 달라지긴 해요. 명화시리즈는 이번 1학기 때 시작한 작업인데, 지금은 하기 싫거든요. (웃음) 이제는 좀 재미없기도 하고, 뻔한 것 같기도 해서요. 계속하다 보니까 기계적으로 별생각 없이 뭔가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당분간 그 작업은 잠시 미뤄두게 될 것 같아요.  

다음으론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남자친구를 그렸어요. 지난 10월에는 남자친구를 만나는 2년 동안 그려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그림들을 전부 전시했었어요.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전시였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정말 기뻤어요. 남자친구랑 만난 지 755일 됐다는 의미에서 <755p>라는 제목으로요. 


아마 남자친구는 계속 그릴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좋아서 그리면서도 기분 좋고 그랬는데, 요샌 사실 약간 손해 보는 느낌도 들었거든요. 왜 나만 얘를 그리고 있지, 싶어서 괜히 심술부리면서 이제 안 그려야지 했는데 (웃음) 그러면서도 계속 그릴 게 보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남자친구 그리는 게 너무 재밌어요. 작업하면서 영감도 많이 받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남자친구와의 키스를 그린 <여의나루>인데요. 그걸 그리고 나서 꽤 마음에 들어서 세상의 다른 키스들도 이렇게 연작으로 그려 모으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주제를 잡을 때도 여러 방면에서 고민을 하기는 하는데, 역시 그 작업을 하면서 제가 기분이 좋을 수 있을지를 늘 먼저 염두에 둬요. 저 스스로가 그림을 그리면서 기분 좋았으면 좋겠고, 그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고요. 나아가선 저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어요. 사랑받기 위해서도 그림 그리는 거죠. (웃음)


단지 작업적인 부분에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무엇이 기분 좋은 일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인가요?


보통 그래요. 일기 쓰는 걸 즐기는데, 일기도 보면 대개 기분 좋은 일들이 적혀있어요. SNS도 그렇고 보통 기분 좋은 뭔가를 할 때 그걸 남기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모아두면 꽤 아름답거든요. 행복하고 밝고, 그런 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또 아름답게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매번 기분 좋기만 한 사람은 물론 아니거든요. 그래서 더 기분 좋은 순간들을 붙잡아두는 일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누구나 그렇겠지만, 언제나 기분 좋을 수만은 없는 일이잖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기분을 전환하는 현진 씨만의 방법이랄까, 그런 게 있으신가요? 그게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많은데요. 글쎄, 일단 단 거를 먹어요. 제가 단 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거의 중독자처럼 찾아요. 시기마다 젤리며 초콜릿이며 사탕이며 골라가면서 단 거라면 일단 먹고 보는 편일 정도로. 요새는 머핀이나 쿠키, 식혜 많이 먹어요.


또 손으로 뭔가 해보려고 해요. 그림을 그린다거나 글을 끄적거리거나 스케줄러를 정리하기도 하고요. 그럼 잡생각도 좀 없어지는 것 같고 생각도 정리되기도 해요. 그냥 집에서 쉬는 것도 기분을 좋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웃음)


그건 아주 확실한 방법이네요. (웃음) 토코투칸이라고 하죠? 발음이 어려운데, 현진 씨 작업에서 자주 보이는 새가 있잖아요. 그걸 반복적으로 그리시는 건 따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사실 그냥 좋아서 계속 그렸어요. 처음 알게 된 게 고등학교 땐데, 문제집을 푸는데 영어 지문에 이 친구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때부터 관심이 생겨서 계속 그려왔어요. 이 부리 부분이 재밌더라고요. 색깔도 그렇고 생긴 것도 그렇고. 실제로도 한두 번 정도 봤는데. 생각보다 꽤 애교도 있거든요. 귀엽죠.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 모르겠는데, 아마 한동안은 계속 그리게 될 친구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버릇처럼 얘를 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땐 좀 줄이고 싶기도 하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모든 그림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리긴 할 거예요. 이제는 이게 제 상징 같은 게 되어버린 거 같기도 해요. 이 토코투칸 그려진 파우치도 선물 받은 거거든요.


작가에게 그런 아이덴티티 하나 정도 있는 건 참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현진 씨와 어울리기도 하고요. 혹시 취미는 따로 있으신가요?


청소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이게 기분을 좋게 해주는 데에도 꽤 효과가 있고요. 정신건강에도 좋고. 단 거 먹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좋아하시거든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기분 좋고.


현진 씨 말씀을 듣고 있으면, 뭐랄까 자선사업가의 느낌이 나요. (웃음) 남자친구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렇고 청소를 하시는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걸 즐기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가요. 그런데 사실 전 ‘싫다’는 말도 많이 쓰는 편이거든요. 좋아하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싫어하는 일들도 많아요.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일단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보기는 했지만, 사실 뭔가 딱 정의 내리는 걸 싫어하는 편이거든요.


평소에도 뭔가 예쁘다거나 하는 말을 잘 안 해요. 제가 뭔가를 예쁘다고 말하는 순간, 그 범위에 포함되지 않지만 충분히 예쁜 많은 것들을 배제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모든 것에 대해, 그냥 각자의 생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저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제가 하는 일들을 통해서 제가 달성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단지 저의 기분만을 좋게 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걸로 다른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할 수 있다면 참 근사한 일이겠죠. 그러나 그건 함부로 강요할 수 없는 것이고 너무 바랄 수도 없는 일 같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사실 사랑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걸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가 기분 좋을 땐 뭐든 아름다워 보이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랑만큼 사람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이건 뭣보다 주고받는 거니까요. 사랑 참 좋아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요. 대화를 마치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하나 드려볼까요. 무슨 말이든 한마디를 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 말하자면 지금까지 살아온 뭐든 말들을 전부 정리해야 한다면요, 어떤 말씀을 남기고 싶으신가요?


언제나 그렇지만, 가족들, 엄마 아빠 동생들, 친구들 사랑하고 남자친구 사랑합니다. 전 이제 가요. (웃음) 전 행복합니다. 더 이상 뭐 보탤 게 없는 삶이었어요. 또 봐요. 안녕.


본 매거진에 실린 인터뷰는 namesofbeauty.com 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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