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창현은 그 자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기애로 똘똘 뭉쳐 있다는 누군가의 칭찬 아닌 칭찬을 듣던 그가, 어느 순간 자신이 너무 미워졌다. 도망치고 싶었다. 어디든, 누구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그렇게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 섬으로 들어섰다. 일정 시간에만 길이 열리는 그 섬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를 맞아주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너무나 어두운 밤이었다. 하루하루가 그 어둠 속에서 멈추길 바랐다. 삶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그는 몰랐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고통이 가장 아프고 힘들다고 여기지만, 창현에게는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매일이 겨울 같았고, 해가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굶주린 그는 ‘해변 쉼터’라고 적힌 간판을 발견했다. 1인 메뉴를 값싸게 판다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는 그를 향해 사장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 만약 “식사하고 가세요”라고 말했다면, 그는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담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 창현은 해산물 라면 한 그릇을 주문했다. 자신의 슬픔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길 바랐다. 고개를 숙이고 연락 없는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맛있게 드세요.”
사장은 라면을 상 위에 놓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창현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끓어오르는 라면을 보며 며칠간 떠올리지 못했던 기억들을 상상했다. 첫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그는 알았다. 이 상황 속에서도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 살아갈 힘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으로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곳에 왔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운 그는 작은 힘을 얻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래요. 잘 가요.”
그는 식당을 나와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섬의 끝자락, ‘경치 좋은 곳’이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차를 세웠다. 계단을 올라가니 하늘과 가까워지고 바다가 펼쳐진 곳이었다.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는 자리를 잡았다. 추운 겨울, 바람이 매서웠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사랑하려면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봐야만 했다.
바람은 그의 뺨을 차갑게 적셨고 파도는 위협적으로 몰아쳤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모든 이야기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솔직해졌다. 자신을 미워하던 이유를 적었고, 그것들을 다시 사랑하고 싶다는 다짐도 적었다. 어느덧 글은 빼곡히 채워졌다. 노을이 지고 어둠이 찾아왔을 때, 그는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아니, 애초부터 살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차를 타고 섬을 떠나며 그는 다시 바다를 돌아보았다. 그곳은 자신이 넘어져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장소였다. 차가운 공기와 매서운 바람 속에서 그는 깨달았다. 삶은 여전히 두렵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힘이 생겼다는 것을. 섬은 또다시 길을 열어주었고, 창현은 새로운 하루를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