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함께 붕괴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이나 ‘공산주의 이상’ 혹은 ‘사회주의 해법’의 유효성만은 아니었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함께 추락했다. 승리한 자본주의의 돌풍이 전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는 과거 자신들의 사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지키려는 결의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신 자살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극단적 중도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극중10)
타리크 알리가 유럽 및 북아메리카 주류 정치에 이름 붙인 “극단적 중도파”extreme centre는 “체제에 봉사하면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겁 많고 고분고분한 정치인들을 뜻한다.”(극중13) “대처와 레이건의 사생아”(극중23)인 그들에 의해 정치는 자본의 도구로 전락한다.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자본의 정치’, 즉 ‘미국식 정치’(극중18)에 전 세계는 포획된다.
그레이버는 이와 같은 ‘미국의 정치’가 가능한 것은 ‘금융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전쟁과 군사력의 역할”(부채641)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레이버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막후의 그 마법사가 무(無)에서 돈을 창조하는 이상한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의 뒤에 총을 든 사람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부채641)
“다른 어느 국가와 달리, 미국 군사력은 ‘글로벌 파워 프로젝션’(global power projection)이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말하자면 미국은 대략 800개에 달하는 해외 군사기지를 이용해 지구상의 어디든 가공의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부채644)
결과는 확실했고 레닌이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정치는 단지 “집중된 경제”에 불과하게 되었다. 이 모든 변화를 촉진하고 주재한 국가기구는 이후 금융화 된 자본주의의 집행위원회 노릇을 하게 된다. 국가는 금융자본주의를 더욱 강력히 방어하면서도, 2008~2009년에 드러났듯 필요한 경우에는 총체적 붕괴로부터 그것을 구제하곤 했다.(극중22)
오늘날 체제 옹호자들조차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들을 어떤 의미에서도 경제 안정, 완전 고용, 지속적인 성장, 사회적 평등 혹은 개인적 자유의 모범으로 내세우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극중20-21) 결국 위험은 세계 곳곳에서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주류 원내 정당들, 즉 극단적 중도파로부터 대두했다.
이는 현재 득세한 경제체제의 본성 자체가 민주화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결과다. 자본의 초집중과 다수 대중의 필요 사이의 모순은 더욱 폭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구는 이제 민주주의의 황혼을 목도하는 중이다.(극중27)
그레이버는 “지금 우리가 미국 자본주의 자체의 ‘군사화’(militarization)에 따른 최종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면서, 지난 30년에 대해 “모든 대안적인 미래들을 파괴할 어떤 거대한 기계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거대한 관료기구를 구축한 세월이었다”(부채669)고 쓰고 있다.
그러면서 그 기구에 뿌리를 둔 세계의 통치자들이 “사회운동 조직들이 성장하고 번창하여 대안을 제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고, 또 기존의 권력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강했”(부채669)으며, 그러기 위해선 “군대와 교도소, 경찰, 다양한 형태의 사설 보안업체, 경찰과 군의 정보기구, 온갖 종류의 선전기구들이 필요한데, 이 조직들이 대안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공포와 맹목적 일치와 절망의 분위기를 조성한 까닭에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상들이 마치 터무니없는 공상처럼 보이기에 이르렀다”(부채669~670)고 주장한다.
그레이버는 ““자유시장”의 옹호자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조직을 유지하는 것이 존속 가능한 시장경제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부채699~670)고 쓰고 있다. 그레이버가 보기에 한 세대 정도 후엔 자본주의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어야 할 이유(생태계 파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있음에도 통치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도 기존의 것에 강하게 집착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쁘지 않을 대안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그레이버가 “자본주의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부채699)
2021. 7. 3.
-T. 알리:『극단적 중도파』, 장석준 옮김, 오월의 봄 2017.
-D. 그레이버:『부채: 그 첫 5,000년』,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