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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누 Sep 08. 2023

영화 <잠>, 병이 아닌 증에 관한 이야기

유재선의 <잠>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잠>이라는 단순한 제목과 예고편을 보면, 이 영화는 몽유병을 소재로 한 단순한 공포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잠>의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현수(이선균)의 병보단 수진(정유미)의 증에 관한 것이다.


영화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현수의 몽유병으로 인한 공포가 주를 이룬다. 잠든 현수는 자해를 하고, 반려견 후추를 죽인다.

새로운 이야기는 2장에서 시작된다. 수진이 품고 있던 아기가 태어난다. 수진은 현수에게서 딸을 지키려 고군분투하고, 의학으로 낫지 않는 몽유병의 원인을 찾는다.

3장에서는 현수의 몽유병 치료가 끝나고,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수진의 광기 어린 행동이 시작된다.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현수의 몽유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수진은 신경증에 걸렸다. 그 이유는 수진의 강박증 때문이다. 수진은 부부의 집에 걸려 있던 가훈처럼, 모든 문제를 부부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수진이 신경증에 걸리는데 한몫했다. 수진이 사적으로 어떤 압박을 받는지도 모른 채 의사는 태평하게 결과만을 지켜보고 그것에 맞는 진단을 하겠다고 한다. 수진의 사적 공포를 의사는 절대 체감할 수 없다.


고시원을 구해 완치될 때까지 나가서 자겠다거나, 차에서 자겠다는 현수의 제안을 수진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현수가 집에 부재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수진은 현수에 의해 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공포에 떨면서도 현수를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


현수의 몽유병과 수진의 강박증은 정반대의 모습이다. 흔히 병은 “원인이 뚜렷한 증상”, 증은 “원인이 정확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증상들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현수의 몽유병은 의학적으로 정확히 진단되며, 그것을 증명하는 이미지도 있고, 처방된 약도 있다.

수진의 강박증은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 그것은 수진의 과거에서 비롯된 걸 수도 있고, 본래의 성향인 것일 수도 있다.

맑눈광 정유미.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아버지가 부재했던 수진의 과거에서 강박증의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너무나 쉽고 진부한 설정이지만 말이다.

수진과 현수를 제외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가족에는 남편이 없다. 이 여성들은 수진에게 이혼을 추천한다. 어찌 보면 노골적이기도 한 설정이다.


수진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가족이 완전해야 한다는 강박. 이 강박은 수진이 샤머니즘에 빠지게 된 이유이고, 아기와 강아지가 있는 정상가족을 꿈꾼 이유이다.


영화 속 주차된 차들은 이상하리만치 흰색 선안에 오차 없이 세워져 있다. 침대엔 항상 침구가 같은 색으로 맞춰져 있다. 균열을 일으키는 건 현수의 녹색 침낭뿐이다.

결국에 영화는 현수가 수진의 강박에 동조하면서 끝난다.

두 사람이 하나라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듯이.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결말이긴 하지만.


9월 10일 일요일 16시, 이 영화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유튜브 라이브가 있을 예정입니다.

링크 : https://youtube.com/@BINU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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