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누 Dec 28. 2023

이선균을 기리며.

솔직히 이선균 생각이 많이 난다.

알랭 드롱처럼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할 때까지, 말론 브란도처럼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연기를 할 줄 알았던 그가 떠났다.


이선균을 처음 본 건 <파스타>였다. 고함치는 요리사를 본 적 없었을 때라(이때는 고든 램지를 알기도 전이었다. 그리고 고든 램지와 이선균의 호통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신선한 캐릭터와 드라마로 내게 다가왔다. 멋진 목소리로 고함을 꽥꽥 지르는 게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는 홍상수 영화에서였다. <옥희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에 모두 이선균이 나왔다. 특히 <우리 선희>, <옥희의 영화>에서 보여준 찌질한 연기를 정말 좋아했다. 이전 홍상수 영화의 찌질남들(김상경, 유준상, 김태우 등등)은 모두 내가 재밌어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배경이 너무 옛날이었다. 이선균은 내가 재밌어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와 시대였다.


세 번째는 <나의 아저씨>였다. 이선균의 우울한 연기가 좋았다. 마치 자기와 맞지 않는 행성에서 태어났다는 듯 겉도는 이선균이 낯설었다. 이전까지의 이선균은 너무 유쾌하고 친근했는데 이 드라마에선 달랐다. 동시에 난 그 배역이 속한 유토피아적인 공동체를 부러워하면서,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상상 한번 해봤었다.


네 번째가 <기생충>이었다. 이 영화로 이선균은 소위 톱스타가 된 듯했다. 천만 영화배우가 됐고, 아카데미까지 갈 수 있었다. 내게서 이선균을 정리하면 이 정도인 듯하다. 14년 정도 그를 봐왔다.


어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옥희의 영화>를 다시 봤다. 그가 이 영화를 얼마나 즐거워하며 찍었을지 영화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덩달아 나도 즐거워질 정도였다.

정유미와 이선균이 문성근에게 번갈아 질문을 하는 장면에선, 얼마 전 그에게 해줬다면 좋았을 말들이 많아서 슬펐다. 또 아차산 중턱에서 정유미와 이선균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라고 하는 장면에선, 그들이 그 장면을 본 모두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더더욱 슬펐다.


죽음의 이유를 찾고 싶진 않다. 그것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기에. 미디어와 같은 거대 담론에 탓을 돌리고 싶지도 않다.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문제고, 문제를 한 순간에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앞으로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싫지만,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이선균을 기리며.


작가의 이전글 영화 <잠>, 병이 아닌 증에 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