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희 Mar 18. 2024

다디단, 밤양갱

노래 부르는 자의 정체성

- 딸, 밤양갱이라는 노래 너무 좋지 않아? 엄마랑 이거 불러보자!


출근길 AI가 들려주는 내 취향의 노래를 따라가다 마음을 붙들려 버린 노래가 있었다. 귀엽고 상큼한 멜로디 라인에 가창력은 물론이거니와 가사에 대한 몰입력이 완벽한 보컬, 그리고...... 그리고 밤양갱이라니!! 하루 종일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끌어안고 핸드폰 화면 가득 비비의 <밤양갱> 가사를 띄웠다.


기필코 이 욕심나는 노래 가사를 다 외워 완벽하게 부르고 싶다는 욕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진행이 빨라서 발음이 어려운 부분이 있고 톡톡 튀는 리듬과 밀당을 하며 노래를 끌고 나가는 것이 매력인 곡이라 부르기 쉽지 않지만 그만큼이나 노래하는 이들에게는 중독성이 있다. 엄마가 오늘 왜 이러나 갸우뚱하며 리듬을 따라오기 급급한 딸을 내버려 두고 혼자 흠뻑 노래에 빠져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곡을 분석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부분에는 조금 더 귀여운 목소리가 필요하지. 여기서는 새침한 듯 뾰로통한 목소리 연기가 딱이야! 고음 부분에서는 BiBi처럼 살짝 비음을 살짝 섞어 날리는 듯한 효과도 좋지. 정공으로 찌르지 말고 살짝 비켜나되 매력 있게 부르는 것이 중요한 노래야. 한 번 더 부를 때는 기교를 줄이고 정확한 음을 내는 데 몰입해 볼까? 이번에는 원곡을 따라 하지만 말고 내 스타일을 섞어 볼까? 꺅!



오랜만이다.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느끼고 조금 더 잘 부르고 싶어 노력하고 곡의 분위기를 조금 더 잘 전달하고 정확한 가사 표현을 위해 몇 번이고 고쳐 부르는 일.


그 흥겨운 리듬 속에서 나는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20년 전 대학 동아리 보컬이었던 시절로. 가요제에 나갈 수준은 아니었지만 줄곧 정기 공연으로 대학로와 클럽 무대에 자주 올랐고 축제 때에는 수천 명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던, 내 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던 그 아이가 불쑥 내 의식을 점령했다.


달콤한 노래 가사처럼 황홀한
시간 여행 속에서
무대 위를 자유롭게 누비며
밤양갱을 노래한다.


몸으로 익힌 감각은 어딘가에 세겨져 말랑해진 마음이 그를 불러내는 날이면 문득 그 실체를 드러내곤 한다. 어떻게 이 감각을 잊고 살았었나 싶게 되살아나는 감각. 짜릿했던 무대와 대중 앞에서의 공연, 박수 소리와 함께 부르던 노래. 이 한 곡의 노래 덕분에 내 마음은 그 시절로 달려간다. 함께 노래하는 딸아이는 잊고 혼자 쿡쿡대며 온몸 다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엄마가 얄미워 입을 틀어막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노래 부르는 자의 정체성으로 다시 한번 꿈을 꾼다.  


새로운 봄을 밝히는 따뜻한 밤공기와
달콤한 노랫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명의 관객.
 그것으로 족한 나의 다디단 밤양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