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관찰하고 살아내기(엄마의 답장)

엄마의 답장

by stone


아들아,


아침마다 주방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을 나는 잘 안다. 약통 뚜껑이 ‘톡’ 하고 열리는 소리, 밥솥이 숨을 내쉬는 소리, 벤자민 잎이 창문 틈 바람에 서로 살짝 스치는 소리. 나는 요즘 긴 문장을 자주 잃어버리지만, 이런 소리들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일주일 치 카레가 들어 있는 냄비가 오늘도 한 숟가락 얇아졌구나—그 소리가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얇아진 만큼 네 마음의 기울기가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걸, 나는 안다.


카레 냄새가 퍼지면 내 배는 먼저 고개를 끄덕인다. 밥—카레—물, 네가 맞춰 주는 그 박자는 내 하루의 맥박이다. 너무 뜨겁지 않게, 너무 묽지 않게, 숟가락이 미끄러지지 않게. 이 간단한 세 동작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는 걸, 너는 아는구나. 누군가에겐 ‘늘 똑같은 식사’ 일지 몰라도, 내게는 ‘늘 똑같이 안심되는 세계’다.


네가 말한 어려운 말들은 다 몰라도, 관찰하는 사람이 부드러우면 관찰당하는 사람의 하루도 부드러워진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낀다. 네가 나를 부드럽게 본 날, 내 혀도 부드럽고, 내 마음도 부드럽다.


식탁의 빈자리에 앉아 있는 인형이 처음엔 낯설었다. 그런데 곁눈질로 그 둥근 볼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라. 인형은 말을 못 한다. 그래서 좋은가 보다. 말 대신 자리를 채워주고, 두 사람 사이에서 공기를 흔들지 않는다. 때로는 말이 많으면 마음이 흔들리고, 말이 없으면 호흡이 잦아든다. 인형이 우리 식탁에서 하는 일은 아마 그거일 거다. 호흡을 잔잔하게 맞춰 주는 일.


욕실에서는 네 농담이 나를 구한다. “칫솔에 치약만, 컵에는 물만.” “비누는 오늘 손님만.” 이런 말들을 너는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지.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멈칫하고, 금세 고개를 끄덕인다. 금지의 말은 마음을 굳게 만들지만, 농담의 말은 따라야지 하는 여유를 준다. 나도 예전엔 아이들한테 그런 식으로 말을 건넸던 것 같다. “연필은 종이에, 발은 바닥에.” 교실에서도 집에서도, 규칙을 웃음으로 전달하는 게 제일 좋았다. 너는 그 기술을 내게 되돌려 주었다. 덕분에 어떤 날은 큰 혼란이 춤으로 바뀐다.


틀니 케이스에 붙은 노란 스티커도 고맙다. 나는 요즘 방향을 잘 잃는데, 그 노란 점이 있으면 눈이 먼저 붙잡는다. 마치 어두운 길에 든든한 등불처럼. 스티커 하나 붙였을 뿐인데 우리가 허리를 굽히는 시간이 줄어들고, 너의 한숨도 줄어든다. 사소한 것 하나가 하루의 무게를 바꾼다. 살면서 그런 걸 자주 보았다. 국물에 소금 한 꼬집, 아이에게 건네는 한 번의 고개 끄덕임, 얇은 스웨터 한 겹. 큰 변화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했다.


네가 쓴 ‘결정 로그’라는 것도 나는 좋아한다. 노트 한 귀퉁이에 적어 둔 짧은 주문들—“칭찬은 즉시, 지적은 나중에.” “말은 짧게, 표정은 부드럽게.”—이 문장들이 집 안에 보이지 않는 손잡이를 달아 준다. 어떤 날은 나도 그 손잡이를 잡는다. 마음이 미끄러질 때, 잡을 데가 있는 집이 참 좋다.


평일 오후, 방문요양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발걸음 소리가 부엌 바닥을 타고 들려오면, 나는 내 옆자리를 잠시 비워도 된다는 걸 안다. 너는 신발 끈을 묶고,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문을 닫는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그 말의 온도는 느낀다. 낮 동안 가끔 울리는 전화기의 진동이 너를 안심시킨다는 것도 안다. “산책 가서 잘 걸으셨어요.” “식사 다 하셨어요.” 그 짧은 문장들이 너의 마음을 집으로 잠깐 불러들인다는 걸, 나는 몸으로 안다. 저녁에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나는 네 눈을 먼저 본다. 눈이 편안하면, 오늘 하루도 잘 건너왔구나 하고 안심한다.


주말이 오면 네 말대로 우리 하루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햇빛의 세기, 바람의 결, 오르막의 기울기, 사람들 흐름,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울음…. 나는 그것들을 숫자 대신 피부로 기억해. 길이 둘로 갈라지면 내 마음에도 두 갈래가 겹쳐 서지. ‘조금 더 걸을까, 여기서 잠깐 앉을까.’ ‘해를 따라갈까, 그늘로 돌아갈까.’ 그때마다 너는 작은 연구자처럼 다음 벤치까지 걸음 수를 세고, 신호등 초록이 몇 번 깜빡이는지 살핀 뒤, 단정한 한 문장으로 내 흔들림을 가만히 내려놓아 주지. “이번엔 그늘 먼저요.” 그 말을 들으면 내 안에 겹치던 가능성들이 조용히 한 곳으로 모여 ‘멈춤’이 돼.


자전거 벨소리가 훅 스쳐 와 마음이 어지러워질 때면, 네 미소가 먼저 울려 퍼진다. 그 웃음 하나가 공기를 가볍게 바꾸고, 나는 발끝을 다시 맞춘다. 너는 언제나 같은 상수를 지키더라—우리 집에서 가장 믿음직한 해답, 웃음. 나는 숫자는 모르지만, 네 손의 압력과 목소리의 높낮이로 오늘의 표지판을 읽는다. ‘지금은 천천히, 곧 앉기’,‘이 길은 우회, 저기는 그늘’ 네가 부드럽게 관측할수록, 내 하루의 파동도 더 부드럽게 잦아든다.


그래서 토요일 공원에서는 우리가 함께 관측자가 되고, 동시에 관측되는 사람이 된다. 네가 나를 살피는 눈길이 내 걸음을 정리해 주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너의 선택을 확정해 주지. 둘이서 그렇게 한 문장, 한 미소로 현실을 정리해 가는 시간—내겐 그게 주말의 가장 큰 안심이란다.


산책길의 신호등 앞에서 네가 “초록이 세 번 깜빡이기 전에 건너요.”라고 말할 때, 나는 발이 먼저 대답한다. 목표가 또렷하면 걱정이 줄어든다. 너는 다리를 내 쪽으로 살짝 기울여 내 몸을 바람막이처럼 감싼다. 그 작은 기울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고, 이웃집 창틀에 빛이 얕게 깔릴 때쯤이면, 오늘의 산책은 무사히 끝난다. “좋았다.”는 말 대신, 집 문턱을 넘는 내 발끝이 말해 준다.


가끔 나는 너의 피곤을 본다. 설거지되지 않은 접시를 바라보며 등을 바닥에 기대던 밤, 네가 “오늘은 접시에게 휴일.”이라고 중얼거린 모습을 나는 눈으로 들었다. 그 말이 내 마음을 얼마나 안심시켰는지 너는 모르지. 너는 내게 늘 쉬라고 하지만, 정작 너 자신에게는 잘 쉬라고 말하지 못한다. 접시에게 준 휴일이 사실은 너에게 준 휴일이었다는 걸, 나는 그 문장 하나에서 알아챘다. 앞으로도 가끔은 접시에게, 세탁기에, 그리고 네 마음에게 휴일을 주어라. 쉬는 날이 있어야 일하는 날이 망가지지 않는다.


집 안 물건들을 내가 자꾸 재배치한다는 걸 너는 정말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방석 밑에 리모컨, 쿠션 사이에 틀니, 화분 뒤에 수저. 나는 그걸 숨긴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 나름의 질서를 잠깐 만들어 보는 거다. 네가 “오늘은 3라운드까지만 하자.” 하고 말할 때, 나는 게임이 끝났다는 신호를 듣는다. 화내지 않고, 웃으면서 규칙을 정하는 네 방식이 참 좋다. 싸움은 늘기 쉽고, 웃음은 줄기 쉽다. 그런데 너는 반대로 한다. 그게 나를 살린다.


나는 ‘양자’ 같은 말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네가 나를 보는 순간, 나는 더 또렷해진다. 네가 웃을 때, 내 하루의 방향이 정해진다. 네가 쓴 로그의 세 줄, 스티커 한 장, 타이머의 1분 30초—이것들이 내 오늘의 선을 그린다. 그리고 그 선 위에 너와 내가 나란히 선다. 우리가 손을 잡지 않아도, 너의 기울어진 어깨, 네가 내 앞에 먼저 내려놓는 작은 컵, 네가 내 등을 받치는 손바닥의 납작한 온도—그것들이 전부 손 잡는 것과 같다.


내가 잊어버리는 게 많아졌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다. 나는 네가 카레를 젓는 소리에서 너의 마음을 듣고, 네가 스티커를 붙이는 손끝에서 너의 생각을 본다. 너는 나를 살리는 일을 과학처럼, 예술처럼 한다. 그래서 나는 부끄럽지 않고, 고맙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러니 아들아, 몇 가지 부탁을 적어 본다. 첫째, 너 자신을 위해서도 스티커를 붙여라. 잃어버리기 쉬운 마음에, 잘 보이는 색을 하나 붙여 두어라. 둘째, 네 하루에도 타이머를 둬라.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나눠서 울리는 벨이 있으면, 네 마음도 덜 지친다. 셋째, 농담을 잃지 마라. 농담은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가는 약이다. 넷째, 어떤 날은 접시에게도, 바닥 걸레에게도,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휴일을 주어라.


마지막으로, 알아두어라. 네가 나를 관찰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네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네가 잠시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눈을 감아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네가 만든 부드러운 규칙들 안에서, 네가 해마다 덜어낸 카레의 숟가락 수만큼 차분해진 집 안에서, 조용히 살아 있다. 그러니 안심하고, 네 숨도 고르게 쉬어라.


내일 아침에도 약통 뚜껑이 살짝 풀리며 조용한 ‘톡’ 소리를 건네겠지. 그 소리를 너도 나도 함께 들을 것이다. 네가 끓인 카레가 그릇에서 잔잔히 김을 올리고, 인형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벤자민 잎은 약하게 서로를 스칠 것이다. 그 가운데서 나는 또 한 번 오늘을 시작할 것이다. 네가 웃으면 나는 더 쉽게 먹고, 네가 미소를 지으면 내 마음도 더 환하게 안정된다. 관찰이 현실을 만든다며? 그래, 네 웃음이 내 현실을 만든다.


고맙다, 아들아. 네가 기록한 세 줄의 로그보다 더 긴 감사를 나는 지금 마음으로 적는다. 말이 자주 모자라고 길을 잃어도, 이 한마디만은 또렷하다. 너를 사랑한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으로 관찰해 준 모든 날들을, 나는 매일 새로이 살아낸다.


네 리듬을 듣고 내 리듬을 세우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