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나 배우러 박사과정 들어왔다.
못 하고 모르니까 배우러 들어온 거다.
그래도!
매번 못 하고 모르는 장면을 맞닥뜨리니 의기소침해진다.
박사과정 들어온 후로 효능감을 못 느끼고 있다.
전공 공부도 연구소 일도 새로운 사람들도 어렵다.
스스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여기서는 다소 눈치 없고 질문 많고 답답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미션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 작업은 날 더 작게 만든다.
디지털화되어가는 세상이 야속하다.
중학생 때 수학을 포기했었다.
쉽게 단념한 건 아니었다.
내 딴에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고 눈물로 얼룩진 과정이었다.
수포자가 된 이후 수학은 고사하고 산수, 더 넘어서는 숫자를 나한테서 뺀 듯 살았다.
부끄럽지만 내 계좌번호와 아이들 주민번호도 못 외운다.
아예 숫자 영역을 스포이트로 쪽 빨아들인 것 같다.
그런 나지만 이제는 논문의 표만 보고도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통계도 돌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
난 유능감이 몹시 필요하다.
유능감을 느끼는 삶이란 어떤 걸까? 싶을 만큼 아득하게 느껴진다.
못 하고 몰라서 막막한데 해내야 할 일은 자꾸 주어진다.
어제는 박사선배가 복도에서 나를 안아줬다.
수고하고 애쓴다고.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웃었다.
그저께는 다른 박사선배가
"선생님은 하얀 떡이에요. 이제 서서히 콩고물이 묻힐 거예요.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
위로와 격려가 되는 포옹과 말씀이었다.
어제는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집에 왔는데
작은애가 기다렸는지 안 자고 있었다.
야식으로 컵라면 먹는 엄마를 작은애가 빤히 본다.
엄마한테 할 말이 있어서 기다렸냐고 물었는데 딱히 그렇진 않았다.
나를 빤히 보는 작은애 시선이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처럼 보였다.
전에는 작은애가 가지고 논 장난감이 그대로 있으면 콧김이 나왔는데
요즘엔 '오늘은 이렇게 놀았구나' 보게 되고 그마저도 귀엽다.
입학 전엔 타 지역 운전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제 운전은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고
명절 스트레스 마저 별일 아닌 게 되어버렸다.
작은애가 잘 자랄 것인가 늘 걱정이었는데 잘 자랄 것 같다!
더 큰 시련을 맞은 긍정효과인가.
논문 표 해석하는 것도 통계 돌리는 것도 컴퓨터작업도 나중엔 이렇게 되면 좋겠다.
요 며칠 남편 얼굴을 잠든 모습만 봤다.
대낮에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그 애정에 또 힘을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