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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콧물 사이에서

by 초록맘 Mar 24. 2025

주방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딸의 방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걸 보았다.

얼마 전 부산행 열차로 떠난 주인의 온기가 사라진 방이었다.

벽에 붙여진 스티커 사진 속에서만 딸이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슬며시 방문 손잡이를 당기자 ‘딸깍’ 소리가 나면서 새롭게 주위가 환기되기 시작했다.




순간, 아들의, 아들에 의한, 아들을 위한 엄마로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방금 전 아들은 강남의 한 안과병원에서 ‘라섹’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침대에 누워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구겨진 티슈를 수북이 쌓아 놓고 있는 중이다.

아들 대신 주방 식탁에 앉아 안과에서 받아 온 진통제, 항생제, 자가혈청, 소염제, 점안액, 인공눈물 등을 차례로 배열해 보았다.

‘냉장보관’이라는 주의문이 있는 자가혈청과 점안액은 조금 더 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간호사로 빙의해서 수술 후 안내문이 적힌 리플릿에 작은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꼼꼼히 체크하기로 했다.



그동안 연구실과 기숙사를 오갔던 아들은 학위를 마치고 여유가 생기자 '라식' 수술에 관심을 보였다.

소소한 요구사항이 없던 아들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라 곧바로 병원을 알아보고 함께 상담을 받았었다.

안과 의사는 각막두께와 정밀검사 등을 고려해서 ‘라섹’을 추천하셨다.

회복이 빠르고 통증이 적은 ‘라식’ 보다 ‘라섹’은 3~4일간의 통증이 있고 각막상피 재생을 위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수술은 생각보다 짧았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오래전 기억과 함께였다.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에도 안과적 수술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이듬해 직장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일과 가정, 육아의 중심 잡기로 정신없이 바빴던 시기였다.



무심코 동네 소아과를 찾았었는데 그날따라 유심히 아들을 관찰하시던 여의사님이 이런저런 간이검사를 해 주셨다.

꼼꼼하신 여의사님은 한쪽 눈에 미세한 사시가 의심된다며 종합병원 소견서를 써 주셨다.

바쁘게 살던 맞벌이 엄마가 하마터면 놓칠 뻔한 아들의 눈 건강을 덕분에 예리하게 알아차린 것이었다.


며칠 간의 휴가를 냈고 간단한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에 안심하며 수술실 밖에서 기다렸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 작은 환자복을 입고 붕대에 감겨 나오는 아들의 얼굴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회복기간에도 집이 아닌 유치원에서 온종일 보내야 했던 맞벌이 엄마를 둔 아들이었다.

한쪽 눈에 투명안대를 하고서도 유난히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매우 특별한 아이라는 선생님의 칭찬에도 위로가 되지 않았었다.

퇴근 후 마주한 어린 아들의 모습이 짠 했던 기억으로만 박재되어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들은 퇴직한 엄마의 시간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아들과 병원을 함께 동행하고 편안히 집으로 데려와 케어해 줄 수 있다는 엄마로서의 효능감에 설레었다.

안약을 시간 맞춰 넣느라 휴대폰 알람을 설정하고 집밥을 챙겨주며 눈 부실까 봐 식탁 조명을 꺼주는 엄마가 집에 있었다.

며칠 동안 세안과 머리 감기, 샤워가 금지된 아들의 이부자리를 털어주고 청소기를 돌려주는 엄마의 다정함이 고스란히 아들에게 닿아 있었다.




잠시, 아들의 엄마로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질투하듯 휴대폰 진동음이 울었다.

부산의 대학 기숙사에 있는 딸의 탁해진 목소리가 들리며 모성애를 건드렸다.


“딸아~ 목소리가 왜 그러니?”

“엄마! 비염이 심각해서 콧물 때문에 잠을 설쳤어요..

초등학교 때 이후로 역대급 경험이에요

어젯밤엔 그냥 젖은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잤다니깐요”

“어머나... 이를 어째”




미세먼지의 계절인 봄이 되면서 잠잠했던 비염이 딸을 심하게 괴롭혔던 모양이다.

아들은 서울에서 눈물을...

딸은 부산에서 콧물을...


눈물과 콧물사이에서 엄마의 심장은 아련하고 애틋한 두 물결이 공존했던 어느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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