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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Dec 07. 2023

3H까지 가자

해피 히피 헤어

 장류진 작가님의 소설 <달까지 가자>에서 착안해 제목을 골랐다. 책 속 등장인물처럼 나도 간절하게 '3H'에 도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기서 3H란, 'Happy Hippy Hair(해피 히피 헤어)'다. 


 올해가 끝나기 전 히피펌을 시도하는 것이 목표였다. 항상 하던 스타일에 고정되지 말고, 새로운 머리나 옷, 신발, 액세서리를 도전하면서 나의 취향을 넓혀가보자는 취지에서다. 그렇다면 왜 굳이 히피펌일까. 첫째, 히피펌 하면 떠오르는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이 엄청난 일탈처럼 느껴져 두근거린다. 둘째, 머리카락이 얇고 숱이 적은 내 모발의 약점을 부스스한 만큼 풍성해지는 히피펌이 보완해 줄 것 같았다. 셋째,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조차도 시도 후 결과값을 가늠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운을 걸어보고 싶었다. 망쳐도 자르면 그만인 머리카락 정도라면, 로또 당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충분히 내걸만하다 생각했다. 


 이를 위해 우선 머리카락이 길어져야 했다. 파마 특성상 원래 길이보다 머리가 짧아지는 걸 감안해야 하고, 특히나 단발 히피펌은 뽀글뽀글이 극대화돼 자칫 삼각김밥처럼 보인다는 주변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앞머리와 함께 조금씩 길렀다. 1차 난관은, 여태 웬만해서는 어깨 아래로 머리카락이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생 시절에는 복장 규정에 맞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로 단발로 지냈다. 염색이나 파마 후 얼룩덜룩 푸석푸석해진 머릿결이 보기 싫어 싹둑, 겨울철 정전기로 롱돕바에 들러붙는 머리카락이 따끔거려 싹둑, 깔끔하게 묶어보자니 버스 좌석에 등 대고 잘 때 목이 배겨서 싹둑, 너무 더워서 싹둑, 취업준비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으로 싹둑, 취업한 기념으로 싹둑, 머리 감는 시간 단축하려 싹둑, 홧김에 싹둑, 들떠 싹둑, 그냥 싹둑. 


 작년부터 주변 이들에게 히피펌에 대한 포부를 밝혔을 때, '과연 너가?'라는 표정이 대다수였던 게 뒤늦게 납득 간다. 어찌어찌 4월 초까지는 잘 버텼는데, 중순이 되고 나니 '조금만 더 버티자'라고 다독이기에는 벌써부터 너무 더웠다. 그리고 회사 출근 전 드라이기로 머리 말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오래도록 말려도 이미 상해버린 끝자락이 부스스하고, 내가 원하는 모양새로 다듬기 어려웠다. 파마를 하면 그런 손질을 안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내 머리카락을 제어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쇄골 아래까지 내려온 순간, 나는 다시 미용실을 찾아 귀밑 5cm 수준으로 짧게 잘라버렸다.


 오랫동안 단발로 지내왔던지라 이 편안함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래도 히피펌한 내 모습이 궁금하긴 한데...... 당장 목 아래 스치는 산뜻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정말 히피펌을 간절히 바라는가. 아니다. 그럼에도 히피펌이 하고 싶은 이유는? 제일 먼저 언급한 히피펌의 자유로움을 획득하고 싶어서다. 내 몸뚱이가 회사 안을 벗어나긴 어렵겠지만 마음만이라도 60~70년대 히피족처럼 지내보자는 마음이다. 히피에서 영어 알파벳 'I'를 'A'로만 바꾸면 이를 수 있는 해피한 히피펌의 길! 이런 환상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호기심이 생기지도 않았을 거다. 미용실에 가서 당당하게 "히피펌 할 거예요"라고 선언하기, 파마약 냄새가 미처 가시지 않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다 거울을 지날 때마다 힐끗 쳐다보기, 매일 아침 파마뭉치 살리면서 거울 보고 '결국 해냈네' 생각하기 등 현실적인 일상 속 만족을 느끼는 순간이라면 이 정도일 테다. '그거밖에', '겨우 그거', '어차피'라는 생각이라면 시도하지 않을 일들이 수두룩빽빽하다. 다시 한번 전의가 생긴다. 올해가 지나고 나서 달성할지라도, 3H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보기로. 


 이후로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머리를 기르고 있다. 자라는 속도가 더뎌 다시 쇄골에 닿는 수준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머리가 자르고 싶을 때마다 앞머리를 자르거나, 머리에 층을 내거나 비니를 쓰거나 머리를 묶는 등 갖가지 노력으로 방어 중에 있다. 지켜봐주시라 해피히피헤어에 가기 위한 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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