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잘 지내니
행복하니
이젠,
편안하니
네게 건네는 이 말들이
시간 속에 연마되어 무뎌질 줄 알았다
우리가 남긴 이야기를
지우고 비워내면
이내 신기루처럼 사라질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내게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너를 흩어지지 않도록 붙들었다는 당당함과 함께
그저 지독한 허상을 바랐을 뿐
텅 빈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는 것을
멍하니 서서
너를 그려보았다
보이지 않아도
너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마음이 닿지 않으면
결코 설명되지 않는 그곳에
너를 그려본다는 것은
이제는 제법 의연해진 나를
흔들어보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흩어져
자유로운 바람으로
스쳐지나가길 바랐는지 모른다
나는 너를 그렸다
나는 너를 보았다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듯 내게 다가왔다
너의 마음은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다시금 널 또렷하게 그려냈다
순간,
깊은 마음의 공간에
쿵 하고 휘몰아치듯
두려움이 내려앉았다
눈가에 촉촉한 물방울이 마중 나왔다
넌 여전히 그 자리에
난 아직도 이 자리에
고작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마음을
발견하고 다시금 가슴이 요동친다
나는 여전히 너를
너는 아직도 나를
파란 하늘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마음에 스며든 너와 살아내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겨진 게 없는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