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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borambo Aug 07. 2023

하드보일드 하드 럭

연기 하는 이유 1


 되돌아보면 마치 영화처럼 삶의 가장 극적인 상황은 꽤나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기 암을 알게 됐을 때, 나와 몇몇 사람만 알던 배우 정보람의 출사표는 터진 폭죽의 고조곤한 파편처럼 무대와 독립영화 세상 이곳저곳에 가 닿았다. 그리고 영화를 시작한지 7년 가량의 시간 만에 유례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했고, 매일 공연 연습을 했으며, 촬영을 하고, 작업했던 단편영화 gv를 가고, 스터디를 하고, 그해 연말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갔다. 영화는 눈물이 나 행사를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좋았고, 그 시기 아빠의 항암도 술술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10월 부산에서 돌아오자 항암약은 전혀 들지 않았단 사실, 영화는 베를린 영화제를 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자잘한 위기와 절망, 이런 것들을 발판삼아 딛어냈을 때 내가 손에 쥘 수 있었던 삶의 태도는 ‘결국 내 입에 밥숟가락을 꽂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오직, 오직, 오직 나만이 내 미래를 바꿀 수 있다’였다. 하지만 주도권이란 건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정신없이 on/off를 오고갔다. 우주에 비하면 쌀 한 톨보다도 더 하찮을 나는 그저, 감히 저항할 수 없는 큰 흐름 속에 있어왔음을 눈치 챌 수 있을 뿐이었다.

 

 11월 처음 공연을 하며 무대에서 나는 10번의 박수를 받았다. 검증이 됐다던 두 번째 약은 제 기능을 못 한 채 아빠와 암세포를 동시에 죽이고 있었다. 아빠는 적막에 압도되어갔고 12월, 아빠보다 커진 암은 아빠를 죽였다.


 그날은 12월26일 아침이었는데, 25일의 나는 어쩐지 아침부터 그 크리스마스를 무조건 잘 보내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 내가 우리 집을 대표해서 끝장나게 잘 놀아주겠어. 몸과 마음이 기묘하게 떠있던 날. 곧 끝날 건 서른이란 나이 뿐이었는데, 사라진 줄 알았던 유년의 마음 같은 뭔가가 아스라이 내 어딘가를 간지럽혔다. 그래서 미국 겨울 영화에서 본 것처럼 트리도 번쩍이고, 오븐 요리가 푸짐하게 준비되어있는 그런 분위기에 나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볼 줄 몰랐던 장도 보고 나 홀로 집에였나, 프렌즈였나를 틀어 놓고 배터지게 음식을 해 먹었다. 하지만 작당을 하고 만든 배경 안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마음은 벅-벅- 긁혀만 갔다. 저녁을 다 먹고 나자 병원에서 임종문자가 왔고, 동생과 병원으로 향했다.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 it’s about learning how to dance in the rain’, 병원으로 가는 내내 이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운명의 신에게 개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도 알고 있었다. 2021년 크리스마스는 현재에서 어린 시절로 끈질기고 구차하게 도망치던 하루였다는 것을. 춤 선생님이 전례 없는 폭풍우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그 후 2022년 한 해는 영화가 데려다 주는 곳으로 휘--휘 따라다녔다. 그 사이 집 안 어른들이 아빠 포함 4분이나 줄줄이 돌아가셔, 어쩌면 내 기대 수명도 60세 언저리겠다는 다소 우습고 씁쓸한 예감도 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이어졌지만 영화가 내 공간을 바꾸었고, 연기가 내 마음과 시간을 흐르게 했다. 영화와 연기가 데려다 주는 곳에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다시 빗속에서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파이브...씩쓰...쎄븐...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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