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시간 - 역도 3
친구인 00상은 각 호실이 똑같이 세 구역으로 나뉜 막대형 구조인 에어비엔비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한 호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공용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사카에 있는 동안, 00상과는 거의 매일 그 공용주방에서 그날의 비-루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무려 37도를 넘나드는 일본의 날씨 때문인지 막대 구조형 호실의 양 끝에 달린 현관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바람이 불지 않는 한증막 그 자체인 공간이었다. 제일 안쪽 방에 달린 작은 에어컨을 켜면 밥을 지어서 다 먹고 맥주를 마실 때 쯤, 그러니까 맥주 때문에 시원해진 건지 아닌지 헷갈릴 때 즈음 조금 선선해지는 그런 온도를 가진 공간이었다. 낮이건 밤이건 부엌 현관문을 열면 뜨끈한 공기가 마치 벽처럼 우릴 맞이했다.
이동하겠다는 지대-한 결심,을 말하기 위한 날도 비-루가 필요했다.
그날의 비-루는 용기의 비-루.
00상, 저 교토에 가려구요. 촬영 때문에 예상보다 빨리 떠난다고 말한지 얼마 안됐는데, 것보다도 더 일찍 떠난다고 말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교토를 더 여행하고 싶어요, 저는 아마 교토를 그리워했나봐요,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거기서 지낼래요, 촬영 준비하는데에 그 곳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더 혼자 지내면서 집중하고 싶어요,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런 소리를 듣는 00상은, 그럴리 없겠지만 아마도 내가 맥주 한 캔에 취한 줄 알았을 것이다.
...이미 숙소에서 혼자 지내고 있지 않나요...?
.............. 어떻게 그 질문에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친구 00상은 내 눈과 횡설수설한 말 틈에서 어떤 걸 이해한 것만 같았다. 그리곤 특유의 쿨한 말투로, 교토든 한국이든 가서 지겹거든 다시 돌아오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있자니 마음 속 한 짐이 내려진 기분이 나면서 문득, 이것저것 탓할 것이 없으니 괜히 00상을 마치 짐처럼 느껴왔음을 깨달았다. 한 짐 덜어진 자리엔 죄책감이 들어 앉았다. 그렇게 해소되지 않은 마음으로 며칠 후에 다시 가게 될 교토를 떠올렸다. 부담감이 엄습했다. 지금의 내 모양새를 보아하니 여기저기 모조리 박차고 나가고 있는데 그렇게나 오매불망하던 동굴 속 시간동안 만약 단 한 톨의 해방감도 느끼지 못한다면 어쩌면, 가망이 없다.
옹삭한 맛이나는 용기의 비-루를 축내고 있던 내게 00상은 또 쿨한 친구가 된다.
보람상, 떠나기 전에 당일 치기로 근처 소도시 여행을 하고 올까요?
좋습니다.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00상.
아니 고맙기만했습니다, 이렇게만 남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