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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borambo Aug 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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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하는 이유 4

 직역하면 ‘너는 너를 어떻게 부르냐?’, 뜻은 ‘네 이름이 뭐니?’하는 기초 프랑스어 회화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기초 1강~5강 사이 수준의 여러 나라 회화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우습게도 고등학생 땐, ‘8개국어’라는 별명이 잠깐 스쳐지나간 적이 있다. 


 록커라면 한번쯤 되어보고 싶었지만 10대 전반을 지배했던 꿈은 외교관이었다. 연극부 하던 시절 즈음, 부모님이 바라는 꿈과 내 꿈이란 숙제를 들고 설거지 하는 엄마에게 물어보니 외교관이 되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외국 이곳저곳을 갈 수 있고 온 가족이 살 집도 주는 멋진 직업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서 크고 자유롭게 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괜히 멋지게 들려 내 꿈도 외교관으로 적어냈고, 중2 쯤 한번 록커라고 적어냈을 때 빼고는 자동반사로 튀어나오는 꿈이 되었다. 


 사실 자동반사 치고는 중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도 Hello가 왜 헬로우라고 읽어야 하는 지도 모를 만큼 아무것도 몰랐다. 아빠는 그걸 알고 있었는지, 초등학교 고학년 진입과 동시에 몇 달간 저녁 9시~9시30분 까지 영어시간을 개최했다. 하지만 아빠나 나나 영어가 보이는 대로만 소리 나는 언어가 아니니 늘 사전을 찾아 발음기호를 보며 읽어야했고, 발음기호가 없이는 영어를 읽지 못하는 요상한 지경에 이른 채 수업은 사라졌다. 그렇게 중1이 된 어느 날 우연히 튼 만화채널에서 어떤 팝가수의 음악이 나왔다. 화면에 떠 있는 노래제목을 소리 내 읽을 수 없던 나는 며칠간 같은 시간대에 집으로 달려와 받아 적어야만했다. 


 한 음악을 시작으로 내 방식대로 언어를 알아내고 멋대로 이해하며 마음 속 세상을 넓혔다. 때마침 생긴 컴퓨터로 얼마나 많은 언어가 있는지 알게 되었고, 외국 드라마/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미친 듯이 빨려 들어갔다. 더 많은 판타지에 빠지기 위해 겸허히, 도굴꾼의 자세로 인터넷 세상을 뒤지고 또 뒤졌다. 워낙에 오타쿠적이었던 이런 성미 때문인지, 잦았던 전학 때문인지, 한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미 서로에게 이해가 있던 친구들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몰라 그들 밖에서 겉 돌며 시간을 보냈다. 대신 친구가 많은 주인공들에게 온기를 나눠받고 우정을 다졌다. 


 흔히 말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감각은 내게, 그들이 가진 환경 속으로 ‘침투’해서 살겠다는 의미였다. 침투에 성공하려면 일단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첫 번째로 중요하게 여겨졌고 어떻게 해서든 저런 사람들이 있을 외국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내가 하고 싶었다. 점점 외교관이 된다는 것은 내 삶에 필요한 일이 되어갔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나는 현실을 몰랐다. 공부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건 당연했고, 수능이라는 단어도 고2 즈음에 알았다. 알고 싶은 것만 알던 뒤죽박죽의 나. 외국에서 원하는 수업을 들으며 학교를 다니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친구들과 잔디에 앉아 수다를 떠는 등의 어느 멀티버스 한 구석에나 있을 법한 모습을, 그저 앉아있기만 한 상태로 상상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제2외국어 수업이 정식으로 내 삶에 들어왔을 땐 환호했다. 꿈에 가까워진다고 착각하며 다른 모든 공부를 손에 놓은 채 프랑스어 수업시간만을 기다렸다. 끝도 없이 멀어지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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