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하는 이유 5.
연기를 배우고 활동을 시작한 이래 늘 마음 속 한켠엔 은근한 죄책감이 있었다. 긴 무명의 터널을 지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연기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사랑, 연기가 아니라면 이번 생은 안 될 것 같다는 필사의 마음, 그런 종류의 뜨거움이 스스로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10대 꾼 꿈을 보내며 이미 소멸했기 때문이다.
배우가 되려면 극단에 속하거나 전공을 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선택지만 알던 초창기 시작지점에서 전공자가 되려는 선택을 한 적이 있다. 21살 성인이었던 나는 하루를 3등분으로 나눴다. 자거나 대본 분석하는 시간 한 덩이,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 한 덩이, 학원 수업 후 연습하는 시간 한 덩이. 버는 족족 학원비로 빠져나갔고 늘 피곤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생활의 결과는 여지없는 탈락. 이런 결과에 비해 모순적이게도 이 때를 가장 열정 있던 시절이라고 알고 있던 때가 있다. 공중에 매달린 스타킹 속에서 발버둥 치는 느낌으로 살던 그 시간이 내 열정의 반증, 내가 연기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에 대한 증거라고 오해했다.
20대 중반 어느 연기스터디 일원이 내게 진지하게 연기를 왜 하는지 물어 본적이 있다.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카운터 훅을 맞은 기분이었다. 입시생 때 준비하는 맑은 꿈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지저분한 정답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그 말 들은 모두 내 말이 아니었다. 별안간 맞은 훅 덕분일까, 다시는 그런 말들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잠시 우물쭈물하다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연기합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당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진실 된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렸던 것 같다. 지혜롭고 싶었으면 철학자가 되지 그랬어. 할 말이 없었다.
그 이 후로 누군가 내게 왜 연기를 하는지, 왜 배우가 되고 싶은가 따위를 물어볼까봐 벌벌 떨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계속 하고 싶고 잘 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연기에 대한 사랑’ 같은 추상적인 말과 ‘다른 직업이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같은 이유들은 납득도 이해도 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연기는 이유까지 대 가면서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20대 후반이 되고 서른을 바라볼 즈음, 집에 돌아가는 버스에서 번쩍하고 깨달았다, 두 번째 침투임을. 내 자신에겐 아무런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연기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정말 무척이나 안심했다. 너무도 안심스러운 마음에 실실 웃으면서 울었다. 나도 이유가 있다! 기분이 좋았다.
연기는 언어다.
첫 번 째 침투 시도로 남은 것, 많은 세계가 있다는 깨달음.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보고 듣고 느낀 세계. 결과적으로 그 세계 속에 존재하며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은 실패했고, 손에 쥔 비행기 티켓은 내가 그린 것이었다.
왜, 어떻게 빨려 들어왔는지도 모른 채 시작 된 두 번 째 침투, 배우의 삶은 내게 발 딛고 있는 이곳의 세계를 알려주었고 진짜로 눈앞에 있는 존재들과 살 붙이고 섞여 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연기가 보여준 현실세계는 내가 넓다고 믿었던 지구 반대편의 세상보다 훨씬 더 깊고 무궁무진하다. 만약 연기라는 신이 있다면 그가 내게 내어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을 배우고 삶을 배운다. 풀리지 않던 의문점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나갈 수 있게 기회를 준다.
무의식이 내게서 꼭꼭 숨겨 묻어뒀던 연기하는 이유를, 이렇게 평범했던 어느 날 방류해줬을 때 진정으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흡수해준 연기에게 고맙다. 배우가 되지 않았을 내 모습을, 이제는 상상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