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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borambo Aug 11. 2023

망가진 사람들의 조우

연기 하는 이유 2

 영화는 거침없이 설원 위를 달리는 개썰매 같기도, 잔잔한 바다에 떠다니는 돛단배 같기도 하다. 그 중에 몇 번 째 개가 연기인지, 돛이 연기인지 갑판이 연기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과 이야기가 뭉치면 앞으로 나갈 힘이 생긴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뭉치면 움직이고, 그렇게 세상 어디로든 뻗어나간다.


 어떤 영화는 질주를 하다못해 순간이동을 해버렸다. 상을 치르고 얼래벌래 지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유럽의 한 숙소에 서 컵라면을 끓여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내 눈앞에 발견된 두 사람. 그들의 공통점, 지대한 한식파, 여성, 이 영화를 했다. 차이점, 서로 다른 사람인 것과 나이..정도..?.. 패기 넘치게도 영화제를 위한 시간보다 더 긴 여행에 돌연 껴진 것이다. 마취총 맞은 사람같이 무감각한, 이와 동시에 종이 한 장 두께만큼의 여유조차 없던 자신의 상태를 간과한 상태로 도착했으니,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은 ‘내가 간과한 모든 것’이었다. 물론 눈앞에 아직 미처 파악 못한 두 사람도 포함이었다.


 우리는 다소곳하고 화기애애하게 여행을 시작했지만, 각자의 삶에서 굴려온 바위를 마주 하 는 데에는 이틀도 긴 시간이었다. 나만 굴리는 줄 알았던 바위. 이렇게 둑- 떨어진 곳에서 마주하고 나니 사람만큼이나 모양과 종류가 다른 바위가 보였다. 많은 삶에 순간에서 이 공동의 작업이 아니었다면 어떤 우연으로 만날 수 있었겠나 싶을 만큼 너무도 다른, 하지만 또 너무도 비슷한 상태의 사람들과, 영화로 다시 뭉친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 있는 내내 각자의 바위에 서툴게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 바위를 굴리다 닳아 온 마음과 상처들을 꼼꼼히 보았다. 뜻하지 않은 순간, 뜻밖에 뭉친 사람들과 지난날을 깁는다. 영화가 준 새로운 경험을 같이하고 살에 덧댄다. 그 후 일 년 여간, 말도 안 되게 좋은 곳에서 같이 바위를 굴리다가 각자의 세상으로 다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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