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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잡문집

카톡 생일 알림 설정을 지운 이유

아날로그형 인간의 낯선 진심

by 깡미

카톡에 뜬 새 메시지를 모두 확인하고 나면, 종종 친구목록에 자동으로 뜨는 '생일친구' 버튼을 눌러본다.

그 알림 기능은 생일이 다가오는 지인들에게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고, 오늘을 축하한다'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건네게끔 돕더니(물론 진심을 담아서다), 최근에 들여다보니 이제는 아예 '선물하기' 버튼까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뜨악. 놀란 턱은 중력의 힘을 받아 한동안 제자리로 돌아올 줄을 몰랐다. 세상에. 축하의 물성마저 원터치 시대가 도래하다니.



생각해 보면 나는 좀 촌스럽고, 불편하고, 번거로운 아날로그식의 향수가 종종 그립다. 그 아련함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내 마음을 다 가져가버린 그 애의 집 전화번호가 궁금했던 그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네 집 전화번호가 뭐냐고 직접 물어보기엔, 시도 때도 없이 목소리만 듣고 끊는 장난전화 범인이 '나'인 것이 여지없이 탄로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내놓았던 대책이 "느이 아버지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고 또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세대주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적힌 전화번호부가 있었다. 그렇게 짝남의 아버지 성함을 알아내어 몰래 전화번호를 눌렀고 그 애의 목소리를 들으려 손을 떨며 전화기를 움켜쥐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보세요?" 한 마디에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번지던 서툴고 순진했던 긴장감. 서둘러 끊고 나서도 귀가 뜨뜻해졌던 그 경험은 이제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날로그식 설렘이 되고 말았다.


개인정보 따위 없던 시절, 그렇지만 더 온기 있었다.




향수에 젖어있다가 카톡이 '마음을 전할 땐 선물하기 페이지' '그건 바로 여기'라고 내 손가락을 채근하는가 싶더니 성별과 연령 그리고 가격대를 고려한 추천 선물 리스트를 주르륵 뽑아냈다. , 이건 축하를 하기도, 받기도 전에 AI에게 먼저 마음을 들켜버린 느낌이다. 이 기능을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니지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창을 닫았다. 그러고 나서는 그냥 조용히 유월이의 필통 속 연필이나 깎고 싶어졌다. 약간 느린 필기체로 사는 기분으로 얼른 리듬을 바꿔보는 것이랄까.

여하튼 나는 카톡의 생일 알림 기능을 껐다. 어느 날 마음이 닿았을 때, 그렇게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서 건네는 인사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누군가는 내게 요즘사람 치고 꽤 불편하게 산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나다운 모양인걸. 느린 방식이 더 좋다고 믿는 사람. 그 느림과 번거로움이 오히려 더 깊은 온도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고 믿는 사람.











사진출처: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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